“현장에 답이 있다”, “전화 통화만 하지 말고 가급적 취재원을 직접 만나라”고 배웠던 A 기자.
2030년 어느 날 정부와 여당이 ‘언론 개혁’을 내세우며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기자들은 더 이상 사건사고 현장에 접근할 수 없게 됐다. 살인과 화재 현장 취재는 물론 정부 부처를 찾아 취재원을 만나는 것도 차단됐다. 오직 해당 기관 공보 담당자의 브리핑과 보도자료에만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 이 같은 법이 통과된 배경에는 언론의 과도한 취재 경쟁과 넘쳐나는 왜곡 보도 및 가짜 뉴스가 있었다.
취재기자의 접근이 하루아침에 전부 차단된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기자들의 경내 출입이 금지됐고, 2007년엔 기자실을 폐쇄하고 정부 부처 사무실 방문 취재를 제한한 이른바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도입됐다. A 기자가 기자 생활을 시작한 2019년에는 법무부가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들어 기자들의 검사실 출입을 금지시켰고 공보관을 통해서만 취재하도록 했다.
언론의 자유가 제한되면서 A 기자는 어느덧 취재 없이 기사를 쓰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머리 한구석에는 의문이 남았다. 왜 힘 있는 자들이 언론의 감시를 벗어나 알리고 싶은 정보만 알리는 상황이 된 걸까.
향후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을 가정해 본 가상 스토리다. 이 같은 상상을 한 것은 최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에 대해 한 검사가 한 말 때문이다. 이 검사는 필자에게 “검사에게 수사를 금지하는 것은 기자한테 취재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어떻게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을 조사하지 않고 유무죄를 판단하라는 건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가 취재를 거쳐 기사를 쓰듯 검사도 수사를 거쳐 기소를 판단하는 것이 ‘업(業)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검사들은 피의자나 고소·고발인 등 사건 관계인들을 직접 대면 조사하면서 감(感)을 잡는다. 관계인의 말을 직접 들으며 얼굴 표정과 동작 등에서 그의 심리를 파악하고 거짓말을 하는지 등을 파악하며 사건의 얼개를 그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사권이 박탈되면 검찰은 대부분의 사건에서 경찰 수사자료만 갖고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일부 사건에 대해 수사권이 한시적으로 남아 있지만 큰 틀에서 경찰 수사와 검찰 수사를 거치며 이중으로 체크되던 범죄 유무죄 판단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향후 헌법재판소가 공포된 법을 위헌으로 판단하거나 시행 과정에서 이대론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거나 보완수사 폭을 넓히는 쪽으로 형사사법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경찰 권한에 대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고, 수사 공백 없이 중대범죄수사청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생산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검찰도 중수청에 수사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혼란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때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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