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닷새 만에 5만5000개. 어린이날인 5일 강원 춘천에서 정식 개장한 ‘레고랜드’ 이름으로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된 개수(10일 오전 기준)다. 개장 첫날 레고랜드에 입장하기 위해 이용객들은 길게는 1.5km까지 줄을 서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상징물 앞에서 스마트폰 카메라부터 들었다. 각 나라의 상징물을 브릭으로 형상화해 사진 찍기 좋은 ‘핫플(핫플레이스)’이 된 ‘미니랜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싸(인사이더)’가 되려는 시민들로 특히 붐볐다.
올 4월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앞에는 높이 15m의 초대형 핑크색 곰인형이 나타나 이목을 끌었다. 이 인형은 롯데홈쇼핑이 자체 개발한 ‘벨리곰’이라는 캐릭터로 지난 벚꽃 시즌과 맞물려 전시 2주 만에 방문자 200만 명을 돌파했다. 곰인형을 배경으로 한 인증 사진들은 인터넷에서 각축을 벌였다.
한편 두 달 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선 명품 패션 브랜드 구찌가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공수한 자재로 꾸민 르네상스식 인테리어에 의자, 테이블, 접시와 집기들은 전부 구찌 제품이었다. 구찌라는 브랜드의 정수를 미각, 시각, 촉각 등으로 느끼는 식사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다. 아니나 다를까, 홈페이지를 오픈한 지 몇 분 만에 한 달 치 예약이 전부 마감됐다. 체험을 통한 소비와 인증샷으로 소통하는 MZ세대를 노린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때론 과도한 ‘인증’ 욕심이 화를 부르기도 한다. 요즘 골프장은 멋지게 차려입고 인증샷을 찍느라 시간을 지체해 다른 팀의 경기 진행을 방해하는 이들로 골치를 앓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미술 전시회에선 연신 찰칵거리는 셀카 소음에 다른 관람객들이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한다. 사진 명소로 떠오른 지역에 사는 일부 주민은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인파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사진 찍기 좋도록 예쁘게 꾸며진 음식들이 막상 맛은 형편없을 때 밀려오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SNS에 올라오는 인증샷은 일반적인 사진과 다르다. 원래 사람들은 눈으로 본 인상 깊은 장면을 기록하고 싶어 카메라를 든다. 이는 찰나적 순간을 나중에 다시 볼 수 있게 소유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욕망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인증샷은 타인에게 나의 삶을 보여주려고 찍는 사진이다. 거기엔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MZ세대에게 인증샷은 ‘남들 다 가는 곳에 나도 갔다’가 아니라 ‘내가 이렇게 감각적인 사람이다’를 보여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이다.
이런 인증샷들이 너무 인스턴트적이고 획일적이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같은 장소, 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촬영자가 어떤 순간에 어디에서 무엇을 촬영할지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물이다. 개인이 SNS라는 공개 일기장에 많은 인증샷을 올리면 올릴수록 결국 그 사람의 삶이 시각적으로 구성돼 하나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이를 통해 형성된 ‘개성적인 분위기’는 같은 성향을 가진 이들을 끌어들이며 새로운 사회관계망이 형성되기도 한다.
나아가 MZ세대가 올리는 인증샷들이 모여 거대한 디지털 아카이브가 구축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예전 필름카메라 시절엔 작동 방법은 물론 현상에서 인화까지 과정이 복잡하고 비싸서 사진 동호회 회원이나 기자 같은 소수의 인원이 시대의 모습을 기록했다. 안타깝게도 이런 아날로그 시절의 사진 자료들은 정리와 분류가 쉽지 않아 상자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거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반면 디지털카메라를 스마트폰으로 접한 MZ세대는 글 대신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해시태그를 이용해 자발적으로 분류까지 하고 있다. SNS 속 사진들은 단지 개인적인 삶의 기록에 머물지 않고 공유 행위를 통해 사회적 아카이브가 되고 있다. 사진이 갖는 사료적 가치가 인증샷의 풍년 속에 새롭게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인증샷의 시작은 자기 과시와 인정 욕구였지만, 현재 유행하는 패션, 음식, 사회 현상 등을 미래에 연구할 수 있는 귀한 자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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