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봐야 알겠지요.” 미술을 하는 서민정 작가는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묻는 내게 이렇게 답했다. 일단 그려 봐야 배치나 색깔, 크기 등을 볼 수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더 나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이 말을 두고두고 곱씹게 되었다.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분야에 열정이 있고 잘하는지 몰라서 고민인 사람들이 있다. 안타까운 경우는 고민만 하면서 무엇도 시작하지 않는 경우다. “이러면 괜찮을까?” “저쪽이 더 낫지 않을까?”라고 고민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기회와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 내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코칭이란 분야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03년 출장에서였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데이비드 채드라는 한 미국인 동료와 맥주 한잔을 마시게 되었다. 당시 나는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고객에게 답을 주려는 컨설팅과 달리 질문을 통해 고객이 스스로 자신의 답을 찾도록 돕는 분야가 있는데 코칭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코칭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며 작은 실험들을 해봤다. 그런 실험들 중에는 실수도, 어설픈 것도 있었지만 조금씩 배우고 발전해 나갔다.
작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물었을 때 서 작가는 세 가지를 말해줬다. 그에 따르면 작가는 무엇인가를 만들고(make), 이를 관람객이나 평론가들에게 보여주며(show), 그들로부터 감상평, 비평, 판매 등 피드백(feedback)을 받는 사람이다.
내가 코치라는 직업을 만들어온 과정도 코칭으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고객들에게 제안과 실행을 하고 평가나 판매 등의 피드백을 받는 것으로 이뤄져 있다. 고민은 필요하지만, 고민만으로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우리에겐 작은 실험들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작게라도 만들어 봐야 그 과정에서 나에게는 무엇이 맞고, 무엇이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으며, 때로는 생각지도 않았던 또 다른 기회가 열리기도 한다.
본 칼럼 2020년 7월 1일자 ‘열정이 나를 발견하기 쉽게 행동하라’에서 나는 한 직장인 사례를 다뤘다. 회사에서 웹서비스 기획자로 일을 하다가 30대 중반에 서울 노원구 주택가에 동네 서점을 창업했던 사람이다. 그 동네 서점은 2년을 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것만을 본 사람들은 ‘창업 실패’로 규정할지 모른다. 서점 문은 닫혔지만, 그 실험으로부터 열정은 열렸다. 자신이 콘텐츠 기획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당시 칼럼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앞으로 더 속도를 낼 것이다. 이제 자신이 어디로 뛰어야 할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직장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동네 서점 운영 경험을 높이 산 전자책 회사에 취업했고, 콘텐츠 큐레이션 업체 사업전략담당으로 옮겼다가, 최근에는 매일 하나씩 노트를 발행해 24시간 동안만 공개하는 것으로 유명한 ‘롱블랙’이라는 미디어를 출시해 일하고 있다. 바로 타임앤코 김종원 부대표이다. 그가 만약 고민만 하고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길을 지금처럼 만들어갈 수 있었을까?
모두 창업이란 실험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하고 있는 직장 내에서 새로운 제안을 해보거나, 해보지 않은 프로젝트에 참여해 보거나, 퇴근 후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보거나, 무언가를 배워 보거나, 소셜미디어를 꾸준히 해보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대화해 보거나 등 다양한 실험거리들을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은 실험들을 계속 해봐야 정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 미술 평론가 제리 솔츠는 사람들 앞에서 조금씩 자기 자신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어색함과 쑥스러움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하니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실험해 보고, 남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불안하고 어색하다. 마치 공원에서 남들이 보는 앞에서 자전거를 처음 배우며 넘어지지 않을까 걱정할 때처럼.
작은 실험들을 하지 않으면 어색함을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삶에 놓여 있는 기회와도 멀어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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