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30·토트넘)에겐 세 살 위 형이 있다. 형제가 어릴 적 탱탱볼 빼앗기를 하고 놀다가 형의 손가락이 꺾인 적이 있다. 둘 사이에 떨어진 공을 먼저 차지하려고 형은 손을 뻗었는데 동생은 킥을 날렸다. 동생이 날린 킥에 형의 손가락이 뒤로 넘어간 것이다. 손흥민은 어릴 때부터 둥글게 생긴 것만 보면 뭐든 발로 차고 다녔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 시작종이 울린 뒤 교실에 가장 늦게 들어오는 아이가 손흥민이었다. 10분간의 쉬는 시간마다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고 수업종이 울린 뒤에야 다시 공을 들고 교실로 향했다.》
“할 때마다 내가 제일 잘했다. 친구들을 쉽게 제쳤다. 달리기도 내가 제일 빨랐다.” 손흥민은 자신이 쓴 글에서 초등학교 때 축구 실력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항상 이기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재미도 있었다고 했다.
손흥민이 세계 축구의 중심인 유럽 빅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잘나가는 ‘월드 클래스’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들 때 종종 거론되는 얘기들이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워낙 좋아했고 또 잘하다 보니 축구에 빠져 살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따라붙는 것이 프로축구 선수였던 아버지한테서 재능을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손축구아카데미 감독(60)은 프로축구 현대호랑이(현 울산현대)와 일화천마(현 성남FC)에서 뛰었고 국가대표 2군으로 선발된 적도 있는데 아킬레스건 부상 때문에 이른 나이인 28세에 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 ‘이러다 죽을 수도’ 할 정도로 훈련
손흥민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빠른 스피드와 함께 양발을 모두 잘 쓰는 것이다. 손흥민이 원래는 오른발잡이지만 왼발도 잘 사용하는 선수인 것처럼 소개될 때가 있는데 이제는 양발잡이로 보는 게 맞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초등학교 3학년 땐 오른발잡이였겠지만 지금처럼 왼발도 잘 쓰면 양발잡이 선수다.
손흥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기 시작한 2015∼2016시즌 이후 16일까지 모두 91골을 넣었는데 오른발로 49골, 왼발로 38골, 머리로 4골을 기록했다. 오른발 골이 더 많기는 하지만 대개의 오른발잡이 선수들보다 왼발 골 비율(41.8%)이 훨씬 높은 편이다. 특히 이번 시즌 들어 기록한 21골 중에는 왼발로 넣은 골이 12골로 오른발(9골)보다 더 많다. 안토니오 콘테 토트넘 감독(53)이 손흥민에게 “네가 잘 쓰는 발이 오른발이냐 왼발이냐” 하고 물으며 궁금해했던 것도 이런 수치들 때문이다. 유럽의 축구전문 매체나 축구통계 사이트에 올라 있는 손흥민의 프로필을 봐도 ‘two-footed player(양발잡이 선수)’라고 표시돼 있는 곳이 적지 않다.
손흥민은 자신이 지금처럼 양발을 잘 쓸 수 있게 된 것을 두고 ‘절대 타고난 게 아니라 혹독한 훈련의 결과’라고 얘기한다. 손흥민은 아버지한테서 축구를 처음 배웠는데 지도 방식이 엄하고 혹독했다.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일찍 접은 아버지는 축구가 얼마나 힘든 운동인 줄을 잘 알았기 때문에 아들에게 특히 엄했고 강하게 단련시키고 싶어 했다. 운동장 인근을 지나던 한 할머니가 아버지와 훈련 중이던 손흥민을 보고서 경찰서에 신고하려 했던 일이 있을 정도다. 어린아이를 너무 심하게 혼내는 것을 보고 의붓아버지가 아이를 혹사시키는 것으로 여긴 이들도 있다고 한다.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에서 프로 데뷔를 한 2010∼2011시즌을 마치고 오프시즌에 한국으로 왔다. 손흥민은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손흥민에겐 여름 뙤약볕 아래에서의 말 그대로 ‘지옥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손흥민은 5주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1000개의 슈팅을 때려야 했다. 오른발로 500개, 왼발로 500개였다. 당시 손흥민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중고교 학생 선수도 아니고 유럽축구 5대 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이 정도로 훈련을 한다고 하면 처음 듣는 사람은 믿기가 어렵다. 손흥민은 지금의 양발 슈팅 능력과 세계 톱클래스로 평가받는 슈팅 정확도가 이때의 훈련에서부터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손흥민은 왼발을 조금이라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에 양말을 신을 때도 항상 왼발부터 신었다.
○ ‘1000억 원 사나이’… “그래도 저평가”
축구 선수들의 이른바 ‘몸값’으로 통하는 이적료 등을 전문으로 다루는 사이트 ‘트란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손흥민의 이적시장 가치는 8000만 유로(약 1068억 원)이다. 손흥민이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할 당시(150만 유로)와 비교하면 몸값이 50배 이상 뛰었다. ‘트랜스퍼마르크트’가 공개한 세계 축구선수 이적시장 가치를 보면 손흥민보다 높은 선수는 13명뿐이다.
손흥민을 두고는 능력치에 비해 시장 가치가 너무 낮게 매겨져 있다는 평가가 많다. 토트넘에서 뛰었던 피터 크라우치(41)는 “손흥민은 무함마드 살라흐(30·리버풀)와 함께 정상급 선수인데 심하게 저평가돼 있다”고 했다. 이번 시즌 EPL 득점왕을 놓고 손흥민과 경쟁 중인 살라흐는 이적시장 가치를 따질 때 중요하게 여기는 나이도 같은데 이적료는 손흥민보다 260억 원 이상 많은 1억 유로(약 1336억 원)로 책정돼 있다. 16일 현재 살라흐가 22골, 손흥민이 21골로 각각 EPL 득점 1, 2위다.
토트넘은 지난해 7월 손흥민과 4년간 재계약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바이에른 뮌헨(독일) 등 빅클럽들도 손흥민 영입에 관심을 보였는데 토트넘은 장기계약 카드로 손흥민을 붙들었다. 손흥민의 나이와 현재 경기력을 감안하면 앞으로 4, 5년간은 충분히 ‘월드 클래스’로 남아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재계약 이후 첫 시즌인 2021∼2022시즌 들어 유럽 무대 진출 후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토트넘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토트넘 구단은 15일(현지 시간) 각 부문 ‘올해의 선수(Player of the Season)’를 발표했는데 손흥민이 모두 휩쓸었다. 손흥민은 구단과 주니어 팬, 공식 서포터스가 각각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에 모두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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