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7일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을 임명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야당의 초당적 협력을 강조했는데, 하루 만에 야당이 부적격으로 판단한 장관 2명에게 임명장을 준 것이다. 야당의 비토에도 윤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첫 조각 인사는 이번이 5명째다. 조국 추미애 박범계 한동훈 등 법무부 수장이 4번 연속 야당의 반대 속에 임명된 것도 불행한 일이다.
한 장관의 임명은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 ‘탈검찰화’ 기조가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검사 출신이 장관을 다시 맡게 되는 것도, 장차관이 모두 검사 출신인 것도 박근혜 정부 이후 5년 만에 처음이다. 대통령실의 민정과 인사, 총무 라인의 비서관급 6명 중 5명이 검사나 검찰 수사관 출신인데, 대통령 부부를 보좌하는 부속실엔 검찰 수사관이 3명 더 근무한다고 한다. 옛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을 대체하는 법률비서관실은 경호처를 제외하고 대통령실 부서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장차관급에도 검사 출신이 중용됐다. 이러니 검찰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은 한 장관 지명 직후 “칼을 거두고 펜을 쥐여준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 수사를 직접 지휘하지는 않지만 검찰에 대한 인사권과 감찰권을 통해 얼마든지 검찰 수사를 통제할 수 있다. 상설특검 카드로 구체적인 수사 대상까지 정할 수 있다. 한 장관은 취임식에서 “사회적 강자도 엄정히 수사할 수 있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분신으로 불릴 정도로 가까웠던 한 장관의 영향 아래 있는 검찰 수사는 정치적 중립 시비에도 더 쉽게 휘말릴 수 있다.
협치는 여야 모두의 양보가 필요하지만 기본 전제조건은 집권 여당이 먼저 한발 물러서는 것이다. 시정연설 다음 날 야당과의 추가 협상도 없이, 야당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한 장관의 임명을 강행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야당은 “정치보복에 대한 선전포고” “대통령이 먼저 협치를 깬 것”이라며 한 장관 해임 건의안까지 언급하고 있다. 여당 내부에서도 낙마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아직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 공백 등 정국 경색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여권에 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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