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형편이 어려워 가게 밖을 서성이던 형제에게 공짜 치킨을 대접한 치킨집 사장님의 선행이 화제가 됐다. 고등학생인 형이 사연을 담은 편지를 프랜차이즈 본사에 보내고, 프랜차이즈 대표가 다시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온라인에선 감동의 댓글 릴레이가 펼쳐졌다. 급기야 누리꾼들은 이 치킨집을 찾아 ‘돈쭐내기’에 나섰고 가맹점 사장은 폭주하는 주문에 영업 중지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돈’과 ‘혼쭐내다’를 합친 돈쭐내기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 기업에 ‘착한 소비’로 보답하겠다는 의미다. 가슴 찡한 이런 돈쭐내기 사연이 심심찮게 이어지면서 메마른 우리 사회에 촉촉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선행이 돈쭐이 되고, 이 돈쭐이 다시 선행을 불러오는 선순환은 이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하다는 위안을 준다.
하지만 돈쭐내기는 소소한 감동 이상의 뭔가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일종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서 세상을 바꾸는 긍정적 힘 같은 것 말이다. 우선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돈쭐내기는 소비의 기준이 더 이상 가격과 품질만이 아니라 가치를 따진다는 점에서 요즘 유행하는 ESG의 소비자 버전이다. 환경에 민감하고(E), 사회적 책임(S)에 투철하며, 지배구조까지 투명한 기업(G)의 제품을 적극 옹호하고 사주는 의로운 소비인 셈이다.
디지털로 무장된 MZ 소비자들의 돈쭐문화는 기부에 대한 위화감을 허물었다. 이들은 꼭 돈이 아니더라도 좋은 제품인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중소기업 제품이나 가게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영업글’이나 ‘별점 테러’로 돈쭐을 내기도 한다. 예전에는 기부가 돈 있고 명망 있는 셀럽들의 전유물이거나 기부 대상 역시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로 특정됐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기부는 더 이상 거창하거나 엄숙한 행동이 아니라 재미와 자기만족을 겸한 일상 속 실천이 됐다.
무엇보다 돈쭐내기에 담긴 긍정의 코드가 주목할 만하다. 소비 심리에는 부정성 이론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착한 기업보다 나쁜 기업에 더 적극 반응한다는 것이다. 구매운동보다 불매운동이 더 파괴적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돈쭐문화가 확산되며 이런 현상을 바꿔놓고 있다. 우리 사회의 ‘느슨한 방식의 연결’을 강조하는 김민섭 작가는 돈쭐내기를 “잘되기를 바라는 대상을 발견하면 잘되도록 만들고야 마는 요즘 세대의 선함이, 연결의 힘을 통해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풀이했다. 응원하고 싶은 가게를 찾아다니며 인증샷을 남기는 MZ세대의 놀이문화가 온라인 미디어와 결합하면서 선한 행동의 파문이 확대 재생산된다는 기대다.
MZ세대의 돈쭐내기는 이제 골목상권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TV에서도 연예인들이 한자리에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성과 친절을 팔아 온 동네 가게를 휩쓸고 다니며 돈쭐을 내주는 ‘착한 먹방’이 인기다. 코로나로 누구보다 힘들었던 소상공인들을 응원한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다. 자신이 누린 가치만큼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돈쭐문화가 정착되면 창의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소상공인이 더 혁신하고 도전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진심을 파는 가게들이 돈쭐나는 감동적이고 신나는 장면이 늘어나길 소망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