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새로운 재정준칙을 마련 중이다. 지난 정부가 제출해 국회에 계류 중인 재정준칙보다 더 엄격한 준칙을 만들어 나랏빚의 무분별한 확대를 막겠다는 것이다. ‘임기 1년 내 재정준칙 도입’은 윤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새 재정준칙에는 나랏빚 증가폭과 재정적자 규모를 ‘각각’ 일정 한도로 묶는 내용이 포함될 전망이다. 1년 반 전 국회에 제출된 재정준칙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을 60%,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채무, 적자 중 한쪽이 기준을 넘어서는 걸 용인해 너무 느슨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헌법, 법률로 준칙을 정한 선진국과 달리 ‘시행령’에 규정해 구속력도 떨어진다. 그런데도 재정지출 확대를 원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새 정부가 임기 초 제대로 된 재정준칙 마련에 나선 건 바람직한 일이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들은 이미 선진국 중 가장 빠른 한국의 나랏빚 증가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급속한 저출산·고령화와 하락하는 성장률에 재정 악화가 더해지면 국가 신용등급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재정준칙을 만든다고 나랏빚 증가세가 저절로 멈추지는 않는다. 퍼주기 대선 공약을 유지하면서 준칙을 도입하는 건 가속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작동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미 자영업자 손실보상을 위해 역대 최대 추가경정예산안을 내놨다. 기초연금 40만 원으로 단계 인상, 병사 월급 200만 원으로 단계 인상, 부모급여 월 100만 원 지급 등 ‘현금성 3대 공약’에만 5년간 68조 원이 든다.
쓸 데는 많은데 돈이 부족하면 정부는 편법을 써서라도 재정준칙을 어기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올해 말 국가채무는 1000조 원을 처음으로 넘어선다. 여야 합의를 통해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흔들 수 없는 재정준칙을 법으로 제정하되, 그에 앞서 무리한 포퓰리즘 공약부터 손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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