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공장에서 ‘기술동맹’ 시동을 걸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어제 방한하자마자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부터 찾았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 첫 일정으로 산업시설을 방문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방명록 대신 3나노 웨이퍼에 서명했다. 한미 동맹이 군사·경제동맹에서 기술동맹으로 확장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장 시찰 직후 연설에서 “지난 몇 년간 공급망 취약을 경험했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그 중요성이 드러났다”면서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과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반도체의 전략적 가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은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 패권을 놓고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고 나섰다. 장비와 소프트웨어 수출을 금지했고, 동맹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한국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시간을 벌었다.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재편에 올라타 세계 시장에서의 위상을 굳히고 있다. 하지만 한국 반도체가 한계 상황에 봉착해 있는 것도 현실이다. 주력인 메모리반도체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있고, 비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성과가 더디다. 그 사이에 대만과 미국 일본은 반도체 특별 지원법을 잇달아 내놓으며 한국과의 격차를 벌리거나 따라잡고 있다. 반면 한국 기업들은 기본적인 인력난조차 해결하지 못해 허덕이고 있다. 업계의 하소연에 지난 정부가 ‘반도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반쪽짜리에 그치고 말았다.
미국과의 기술동맹은 반도체뿐만 아니라 배터리, 소형모듈원전(SMR) 인공지능(AI) 양자기술 등 미래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들 산업은 국가 안보자산으로까지 평가받고 있다. 정부는 이 기회에 한국 기업들의 전략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종합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이날 밝힌 대로 투자 인센티브와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특히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빨리 풀지 않으면 한미 기술동맹으로 모처럼 맞은 기회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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