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5년간 한국전력 주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문 정부 출범 직전 4만5800원이던 한전 주가는 30일 2만3300원으로 반 토막 났다. 매년 수조 원씩 이익을 내던 초우량 기업이 만성 적자 기업으로 전락한 탓이다. 한전은 국제유가가 하락한 2020년을 빼고 2018년부터 줄곧 적자를 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5조86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더니 올해는 1분기(1∼3월) 만에 이를 뛰어넘는 7조7900억 원 적자다.
한전은 회사채를 찍어 자금난을 메우고 있는데, 벌써 올해 발행액이 15조 원으로 작년 연간 규모(12조 원)를 넘어섰다. 증권가에선 한전 부채비율이 올해 말 300%대로 치솟고 4년 뒤 완전 자본잠식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예견된 실적 부진’ ‘멀리 볼 때가 아니다’ 같은 암울한 제목의 보고서가 쏟아진 배경이다.
한전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원자재값 급등으로 전력 구입비가 치솟았는데도 전기요금을 거의 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전은 탈원전 정책에 따라 발전단가가 싼 원전 대신 유가 변동에 취약한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비중을 높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석유, LNG 등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한전이 발전사에서 사오는 전력도매가격은 181원으로 1년 새 136% 폭등했다. 반면 가정, 공장 등에 판매하는 전기 단가는 110원으로 1년 전과 비슷하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 것이다.
문 정부는 유가가 뛰면 전기료도 오르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도 여론과 선거를 의식해 인상을 미루더니 ‘대선 이후 인상’으로 차기 정부에 공을 넘겼다. 김종갑 전 한전 사장이 “콩값(연료비)이 오를 때 두부값(전기료)을 올리지 않았더니 두부값이 콩값보다 싸졌다”고 지적한 상황이다.
이 같은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한전이 전기를 외상으로 사서 공급하도록 규칙을 바꾼 데 이어 발전사에서 사들이는 전력도매가격에 상한선을 두기로 했다. 도매가격을 묶어 한전의 비용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전의 손실을 민간 사업자를 포함한 발전사들에 떠넘기는 반시장적 편법이라는 지적이 많다. 한전과 발전사의 동반 부실도 우려된다.
이대로 가다간 한전의 올해 적자가 3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한전의 눈덩이 적자는 한전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기업 적자가 쌓이면 국민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고, 전력 인프라 투자가 위축되면 국민 삶에도 타격을 준다. 2008년에도 한전이 사상 첫 적자를 내자 6600억 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이어 6년간 전기료를 42%나 올려야 했다.
이보다 비참한 상황을 맞지 않도록 연료비 상승에 맞춰 전기요금을 정상화하는 게 정공법이다. 전기료 인상은 가뜩이나 불안한 물가를 자극하고 기업 경쟁력에도 부담을 줄 수 있지만 이는 인상 후 세금 감면이나 바우처 지급 등을 통해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는 해외 사례를 참고하면 된다. 전기료 산정 때 ‘원가주의 원칙’을 고려하고, 요금을 결정하는 전기위원회도 독립기구로 만들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이 한전 회생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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