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용산 청사 1층 로비에서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워싱턴 정가에서 ‘도어 스테핑(door stepping·취재진과 즉석에서 문답을 나누는 것)’으로 불리는 그것이다. 처음 할 때는 집들이 인사 정도로 생각했는데 내각 인선부터 공직자 검증 시스템, 추경까지 국정 전반으로 문답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처음 벌어지는 풍경이라 의미가 작지 않다. 3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우선 국민들이 대통령을 잠시나마 날것 그대로 볼 수 있다. 이전 정부에서는 대통령들을 행사장이나 회의 인사말에서 주로 봤다. 대개 사전에 짜여진 것으로, 음악으로 치면 라이브가 아니라 녹음 버전에 가깝다. 회의 인사말은 홍보수석이나 대변인이 뉘앙스 등을 ‘마사지’하고 영상으로 내보낼 수도 있는 것들이다.
대통령이 어떤 이슈에 꽂혀 있는지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직속 인사검증관리단을 둘러싼 논란을 묻자 윤 대통령은 주먹을 위아래로 흔들며 답변을 쏟아냈다. 대통령 의중이 강하게 실린 조치라는 걸 대변인 브리핑 백 마디보다 이 한 장면으로 쉽게 알 수 있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 능력과 직결되는 물리적, 정신적 건강 상태를 짐작할 수도 있다. 이전 정권에서 치매설 등 대통령 정신 상태를 놓고 다양한 억측이 나온 것은 수개월이나 연 단위로 언론에 나타난 것과도 무관치 않다.
물론 윤석열표 도어 스테핑은 정착 여부를 논의하기도 이른 걸음마 수준이다. 질문은 한두 개를 넘지 않고, 질의응답은 대통령과 기자 간 티키타카식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필자는 한국 대통령의 첫 도어 스테핑이 정착하려면 대통령이나 기자들 모두 선을 넘어서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자들에겐 “그래도 누구 앞인데…” 하는 심리적인 검열 같은 게 있을 수 있다. 대통령도 “뭐 이런 걸 다 묻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답은 차갑게 식어버릴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요새 미 정가를 자주 언급하는데, 특파원 시절 지켜본 워싱턴에선 정말 별의별 질문과 문제 제기가 대통령을 향해 쏟아졌다. 대통령과 기자가 만나는 곳은 늘 시장이나 카페처럼 시끌벅적했다. 버락 오바마는 2014년 8월 이슬람국가(IS) 등을 겨냥한 대테러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 베이지색 정장을 입고 나왔다. 언론은 안보를 언급하는 자리에 부적절한 옷 색깔이라고 비판했다. 물건 팔러 나왔느냐는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백악관 대변인은 반박 성명까지 냈다. 그런 오바마는 퇴임 회견에서 언론에 “대통령에겐 아첨꾼이 아니라 회의론자(skeptics)여야 한다. 나에게 거친 질문을 던져야지 사정 봐주고 칭찬하면 안 된다”고 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임기 첫해 정식 회견 외에 도어 스테핑만 216회 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했을까. 오바마의 퇴임 회견을 빌리면 “언론이 집요하게 진실을 끄집어내 나라를 최고의 상태로 만들어 달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여론을 날것 그대로 알고, 정권이 속에서 썩어들어 갈 가능성을 막는 정치적 백신을 원한다면 용산 청사 1층 로비는 지금보다 더 뜨겁고 거칠어져야 한다. 인근의 노량진 수산시장처럼 펄떡이고 살아있어야 한다. 기자들은 좌고우면하지 말고 돌직구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치권에 오랜만에 도입된 좋은 시도다. 훗날 누가 차기 정권을 잡든 되돌리기 어려운 정치 문화로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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