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지나친 돈 풀기, 재정준칙 엄격한 법제화 시급하다[동아시론/옥동석]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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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재정준칙, 미래에 빚 떠넘기는 구조
尹 재정적자 한도 긋고, 준수의지 표명 필요
준칙 법으로 정하고, 의결 요건도 높여야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한국재정정책학회장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부 교수·한국재정정책학회장
재정준칙을 마련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의지는 확고한 것 같다. 대선 기간뿐 아니라 당선된 이후에도 인수위 국정과제에 재정준칙 도입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정준칙 없이 그때그때 확장재정을 운영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의지를 그대로 추종했다. 나랏빚 급증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고조되자 문 정부는 마지못해 2020년에 한국형 재정준칙을 발표했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입법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한국형 재정준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는데, 윤석열 정부는 이들을 반드시 극복해 내야 한다.

첫째, 문재인 정부가 발표한 한국형 재정준칙의 산식에 따르면 국가채무비율이 60%에 미달할 때에는 재정적자를 3% 이내로 제한한다. 국가채무비율이 80%, 100%로 증가하면 허용되는 재정적자는 2.25%, 1.8%로 각각 줄어든다. 국가채무비율이 낮을 땐 재정적자 허용수치가 높고, 반대로 높을 땐 허용수치가 줄어든다. 하지만 인구 고령화로 인해 국가채무비율이 장차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문재인 정부의 재정준칙은 미래 세대에 지출 감축의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기회주의적 산식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국가채무비율은 의무지출인 복지지출의 증가로 20∼30년 뒤에는 150%를 넘어 일본처럼 급등한다는 사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는 2012년 이후 여러 차례의 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발표했는데, 이들의 한결같은 결과는 우리나라 국가재정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집권 5년간 준수해야 할 재정적자의 한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지금부터 당장 준수해 내겠다는 의지를 함께 표명해야 한다.

둘째, 재정준칙에서 제시하는 재정적자의 관리목표를 문재인 정부는 ‘통합재정수지’로 규정했으나 반드시 ‘관리재정수지’로 변경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4년 이래로 재정의 영역을 일반재정과 사회보장으로 구분해 일반재정의 수지인 ‘관리재정수지’를 재정운용의 중심지표로 간주해 왔다. ‘통합재정수지’는 관리재정수지에 국민연금 등의 사회보장수지를 합한 수치인데, 사회보장수지는 정책적 의지와 무관하게 인구구조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정권의 재정운용 실적을 평가하는 데에는 통합재정수지보다 관리재정수지가 훨씬 더 적합하다.

사회보장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고용보험으로서 국민들이 보험료 등 부담금을 납부하고 그 대가로 급여를 받는 것이다. 부담-급여의 대가관계에 기초하기에 사회보장은 그 회계 내에서 자체적으로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반면 일반재정에서는 대가관계가 없는 보편적인 조세수입을 국방, 치안, 행정, 사회기반시설 등 일반적 재정지출에 충당한다. 이처럼 사회보장과 일반재정의 성격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연금개혁과 재정개혁의 원리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어 구분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에서는 인구 고령화에 따라 2030년대까지 흑자가 유지되지만 그 이후에는 적자가 지속되는 기간별 불균형이 예정돼 있다. 그런데 지금 당장 흑자를 보이는 사회보장수지가 포함된 통합재정수지를 재정운용의 목표로 삼는다면 일반재정의 적자가 묻혀져 과도하게 방치될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으로 문재인 정부의 재정준칙은 수량적 한도를 대통령령에 규정하도록 하기에 정치인들의 재정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윤석열 정부가 재정준칙을 아무리 엄격하게 운용한다 하더라도 5년 뒤 등장하는 새로운 대통령이 대통령령을 개정한다면 재정준칙은 곧바로 무력화된다. 우리가 재정준칙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정치인들에게 재정운용의 ‘백지수표’를 위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 임기 5년간의 허용 가능한 재정적자 규모를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켜나갈 수 있도록 재정준칙의 강력한 법제화가 필요하다.

독일은 2009년에 수지균형의 재정준칙을 헌법에서 규정했다. 우리도 이를 본받아 재정준칙, 그리고 그 예외 인정의 요건과 규모를 정치인들이 함부로 변경할 수 없도록 헌법처럼 엄격하고도 강화된 의결요건(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재정준칙이 안정적으로 준수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르면 여야의 쟁점 법안은 과반수보다 엄격한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이 가능하다. 이러한 사례를 따른다면 재정준칙의 의결요건도 얼마든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文 정부#재정준칙#尹 재정적자#준수의지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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