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여성들은 정규 교육을 받거나 전문 직업을 갖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메리 빌은 영국 최초의 여성 화가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독립적인 화실을 운영하며 그림 판매로 가족까지 부양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1633년 영국 서퍽에서 태어난 빌은 목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워 화가가 되었다. 18세 때 직물 상인 찰스 빌과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아 양육하면서도 계속 활동했을 뿐 아니라 초상화가로 명성도 얻었다. 화가조합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귀족 후원자도 없었지만, 20년 이상 개인 화실을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빌이 33세 때 그린 자화상에는 화가이자 엄마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벽에는 팔레트가 걸려 있고, 오른손은 작은 캔버스를 잡고 있다. 두 아들의 얼굴을 연습용으로 그린 스케치다. 기혼 여성이지만 매일 치열하게 작업하는 성실한 화가임을 보여주는 자화상인 것이다. 빌은 창작과 판매에 있어서 뛰어난 전략가이기도 했다. 명성과 권위 있는 인물을 선택해 모델로 그렸고, 초상화 가격은 두상 5파운드, 반신상 10파운드로 미리 책정해 판매했다. 초상화 제작으로 연간 약 200파운드의 수익을 올렸는데, 가족 모두를 충분히 부양할 수 있는 큰돈이었다. 빌은 자신의 유화 기법을 글로도 기록했다. 1663년 ‘관찰(Observations)’이라는 글을 써서 배포했는데, 이는 영국 화가가 쓴 최초의 유화 기법 안내서였다.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던 남편은 아내가 더 성공하자 아예 직업을 버리고 아내의 매니저가 되었다.
빌의 그림은 당시 여성 화가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였던 ‘남성적’이라는 호평도 받았지만 ‘무겁고 뻣뻣한 채색’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고객은 끊이지 않았다. 당대에 그녀를 아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유화를 잘 그렸고, 성실한 화가였다고. 결국 빌의 성공 비결은 자화상 속 모습처럼 뛰어난 재능과 성실함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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