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의 꿈[이준식의 한시 한 수]〈163〉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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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모양의 초승달 아직 반달은 아니지만, 또렷하게 푸른 하늘가에 걸려 있구나.

사람들이여, 눈썹 같은 초승달 작다 마시라. 보름날 둥글어지면 온 천지 비출지니.

(初月如弓未上弦, 分明掛在碧소邊. 時人莫道蛾眉小, 三五團圓照滿天.)

― ‘초승달을 노래하다(부신월·賦新月)’ 무씨의 아들(무씨자·繆氏子) 당 현종 시기



시에 새겨진 초승달 하면 떠오르는 미당의 ‘동천(冬天)’.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미당은 ‘즈믄(천일) 밤의 꿈으로 맑게 씻은’ 초승달에게서 범접할 수 없는 차가움과 순수함을 읽어냈다. 하늘을 날던 ‘매서운 새’마저도 그 앞에서는 짐짓 비껴 갈 만큼. 시인은 동천에 걸린 초승달을 경이와 지성(至誠)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동천’의 초승달이 보여주는 절대자(임)에 대한 외경심이나 상징성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초승달의 숨은 위력을 인정한 점에서는 이 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직은 반달에도 못 미치지만 ‘또렷하게 푸른 하늘가에 걸린’ 모습에서 초승달의 무한한 가능성이 번뜩인다. ‘눈썹 같은 초승달 작다 마시라’는 당당한 훈계는 머잖아 온 천지를 환하게 밝히리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이하게 시인의 이름이 무(繆)씨의 ‘아들’로 기재되어 지은이가 나이 어린 아이임을 의도적으로 내비쳤다. 무씨에게 시재가 뛰어난 일곱 살 난 아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당 현종(玄宗)이 아이를 불러 즉석에서 짓게 한 게 이 시라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이가 바라본 초승달의 초롱초롱한 형상과 잠재력, 이는 지금은 비록 미약한 존재이지만 언젠가 세상을 밝히리라 다짐했던 뭇 선비들에게도 위안과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

#초승달#꿈#동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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