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협회는 어제 ‘세계 부채 보고서’에서 1분기 말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04.3%로 조사 대상 36개국 중 가장 높았다고 밝혔다. 가계빚이 GDP보다 많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했다. 한국의 기업부채 비율은 최근 1년 동안 5.5%포인트 늘어 증가 속도 면에서 조사 대상국 중 2위였다. 가계와 기업을 아우르는 민간 부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임계치에 이른 것이다.
민간 부채가 위험수위까지 불어난 것은 집값과 전세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대출 수요가 몰린 데다 저금리에 따른 증시 활황으로 이른바 ‘영끌 투자’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1분기 가계부채 잔액은 1859조 원으로 코로나19 초기인 2년 전보다 250조 원가량 증가했다. 은행들이 가계에 비해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법인 분야에 영업력을 집중한 결과 기업부채는 지난해 말 2360조 원대를 넘어선 뒤 최근까지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는 우리 금융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부채를 안이하게 방치하다가 일어난 경제쇼크였다. 지금도 부동산과 주식 등 위험자산에 부채가 과도하게 쏠린 상태지만 금융당국은 제대로 된 처방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부실 우려가 커지는 동안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제대로 갚기 힘든 좀비기업 대출은 58조 원에 이르렀고,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의 상환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자들은 실질적 대책 없이 경제의 펀더멘털만 강조하고 있으니 25년 전 위기 때와 뭐가 달라진 건지 의문이다.
지금은 물가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을 통한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시기다. 하지만 현 수준의 민간 부채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금리만 대폭 올렸다가는 가계와 기업이 연쇄 부도 위험에 내몰려 전체 경제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4월 취임 당시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하는 한은은 부채 연착륙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의 민간 부채는 ‘관심’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한은과 정부는 부실 우려가 큰 부채의 총량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구조조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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