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꽤나 여행해 봤다는 사람도 ‘채터누가’라는 지명은 그리 익숙지 않을 것이다. 테네시주 남부, 인구 18만 명의 이 소도시는 굽이치는 강줄기가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는 독특한 지형과 절경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 이 도시 팀 켈리 시장(市長)의 화상 브리핑에 참가했다. 미국 국무부가 특정 도시를 주제로 이런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채터누가는 사연이 있는 곳이다. 미국 남부 대표적 공업도시였던 이곳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더러운 도시’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공장에서 나오는 뿌연 먼지로 낮에도 전조등을 켜고 운전해야 할 정도로 환경오염이 심각했다. 낮은 삶의 질 때문에 사람들은 하나둘 도시를 떠나고 이로 인해 산업 기반이 붕괴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 작은 도시는 ‘채터누가 웨이’라는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시작된 1980년대 중반 전환기를 맞았다. 각계각층 시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마을 살리기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쓰레기 매립장으로 방치돼 있던 강변을 복구하는 것부터 시작해 주택 건설, 인프라 조성 등이 진행됐고 지역 유지들의 기부도 이어졌다. 도시 재건의 핵심은 기업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었다. 시 당국은 세금 혜택과 무상 토지라는 당근을 제공하고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가동했다. 이는 2011년 독일 폭스바겐 공장 유치라는 큰 성과를 낳았다.
그 무렵 채터누가는 다른 도시들이 생각지 못한 또 하나의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도시 전체에 당시 미국 평균 인터넷 속도의 수십 배인 광케이블을 깔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공급했다. 그러자 그동안 도시를 외면했던 기업과 근로자들이 다시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일상이 된 요즘 이곳은 빠른 인터넷 덕분에 ‘원격근무자 천국’으로 재탄생했다. 켈리 시장은 브리핑에서 기업을 끌어들이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도시의 다양한 노력들을 열거한 뒤 “‘남부의 환대(southern hospitality)’가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라며 웃었다. 미국 남부 사람들 특유의 친절함이 기업 친화적인 마인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남부의 친기업 정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테네시 앨라배마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 같은 주정부는 기업 유치를 위해 세금 감면, 인프라 제공은 물론 직원 복지까지 대신 챙긴다. 그 결과 폭스바겐을 비롯해 현대차 도요타 볼보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대거 이 지역에 공장을 차렸다. 일자리가 늘어나니 실업률도 평균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 미국은 자발적 퇴사자가 매월 500만 명에 육박하고 근로자는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찾아 떠도는 일자리 대이동이 진행 중이다. 채터누가 사례는 격변하는 경제 상황에서 기업과 인재,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달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나란히 걸어 나오는 장면이었다. 그는 조지아주에 대규모 전기차 공장 투자를 해줬다면서 연설 내내 정 회장을 추켜세우고 “생큐”를 연발했다. 그 순간을 위해 조지아 주지사는 평소 선물과 편지 공세로 정 회장에게 각별한 공을 들였다는 후문이다. 또 공장 터를 답사하러 조지아를 방문하는 정 회장을 맞이하려고 하루 전부터 호텔을 잡아 대기하는 열성도 보였다고 한다. 여기 공무원들은 경제와 일자리를 위해서라면 지위 고하를 떠나서 정말 못 할 일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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