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주일본 대사에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 주중국 대사에 정재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주러시아 대사에 장호진 전 대통령외교비서관, 주유엔 대사에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를 각각 내정했다. 이로써 주미 대사에 먼저 지명된 조태용 전 국민의힘 의원을 포함해 새 정부의 첫 미일중러 4강과 유엔 ‘빅5 대사’ 인선이 마무리됐다.
새 정부 초대 빅5 대사는 모두 전문가와 외교관 출신이라는 점에서 비(非)외교관 정치인 출신이 주류를 이뤘던 전임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된다. 별다른 존재감도 없이 자리만 지키거나 엉뚱한 언행으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던 전 정부 대사들과는 달리 식견과 경험을 토대로 외교적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은 미중 갈등과 공급망 교란 같은 대외변수를 관리할 전문성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다만 새 대사들도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이나 고교 동기생이라는 점에서 보은성 인사에서 벗어나진 못했다. 외교관 출신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중용됐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밀려났던 미국통이다. 새 정부 국가안보실부터 외교부, 국가정보원까지 미국통이 대거 귀환했는데, 대사 인선으로 한층 두드러졌다. 미국에서 중국사와 중국정치를 공부한 주중 대사 내정자도 한국의 ‘눈치 외교’를 강하게 비판하던 학자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주의와 인권 같은 보편가치에 기초한 ‘글로벌 중추국가’ 구현을 내걸고 한미동맹을 최우선에 두는 대외전략 기조를 천명해 왔다. 서방과 중-러 간 대결 국면이 가팔라지고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상황에서 한국 외교의 좌표 이동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미국 일변도라 할 만큼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리는 외교는 다른 쪽의 반발과 마찰을 낳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새 정부 출범 이래 한미동맹 강화와 한일관계 복원을 위한 외교적 노력은 확연히 눈에 띄지만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사실상 빈칸으로 남아 있다. 가뜩이나 첨예해질 신냉전의 외교전선에서 중, 러와의 관계에서도 국익을 위한 다층적 실용외교가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갈등이 불거졌을 때 주재국을 설득하며 완충 역할도 해야 하는 최일선 외교는 대사의 몫이다. 구경꾼 행세를 하거나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대사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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