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7조 적자 낼 때 가스공사 9000억 흑자
전기·가스위 설치해 ‘요금 폭탄 돌리기’ 막아야
위기에도 돈을 버는 기업은 있다. 한국가스공사는 올해 1분기(1∼3월) 9126억 원의 역대급 영업이익을 냈다. 한국전력이 7조7869억 원의 최악의 적자를 낸 것과 대조적이다. 증권사들은 가스공사에 대해 ‘사상 최대 실적이 보인다’ ‘내년까지 불어올 순풍’ 등의 자극적 제목을 단 매수 추천 보고서를 쏟아내며 목표 주가를 20% 넘게 올려놓았다.
가스공사 매출의 94%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해 도시가스용과 발전용으로 판매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이익은 정부가 승인한 마진(적정투자보수)에 좌우된다. 공사가 기대 이상의 실적을 냈다면 좋은 일이지만 정부 도움으로 ‘횡재’를 얻은 게 아닌지도 따져봐야 한다.
가스공사는 지난해 12월 천연가스공급규정을 바꿨다. 겨울철 증가한 수요를 대느라 장기계약 대신 현물시장에서 비싸게 도입한 LNG 비용을 발전사들이 책임지게 한 것이다. 당시 ‘발전용 연료비가 올라 한전 경영이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정부는 제동을 걸지 않았다. 발전업계에서는 가스공사의 일방적 조치에 “선수가 심판까지 보면서 골을 넣는 격이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오히려 정부가 스페인 포르투갈처럼 가스 가격 상한을 설정하고, 2008년 국제유가가 크게 올랐을 때처럼 가스공사가 연료비 인상을 일시 유보했다가 나중에 회수하는 식으로 고통 분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스공사의 이 결정은 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도시가스 요금 인상 압력을 덜면서 발전사들에 연료비를 전가하는 ‘신의 한수’가 됐다. 올해 1분기 가스공사의 발전용 LNG 판매 단가는 전년 대비 116.9% 상승했다. 도시가스용 단가 상승률(21.1%)의 5배가 넘는다. ‘탈석탄 정책’으로 LNG 발전 비중은 2017년 22.8%에서 지난해 29.2%로 높아졌다. 한전이 전력을 사올 때 내는 전력 도매요금도 올해 4월 전년 대비 164.7% 급등했다. 이런 데도 정부가 전기 소매요금은 묶어두다 보니 한전은 세계 전력회사 중 최악의 적자를 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한전의 적자가 불어나자 이제는 전기 도매요금에 상한을 두겠다고 예고했다.
이런 추세라면 한전은 올해 23조 원이 넘는 역대 최대 적자를, 가스공사는 역대 최대 흑자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가스공사는 경영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 두둑한 성과급을 받는 ‘횡재수’가 있겠지만, 한전은 고강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공기업 한전이 적자를 감당하려고 막대한 회사채를 발행하면 다른 기업들은 금리 상승과 자금 확보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경쟁국들이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기업 보조금으로 간주하고 통상 마찰의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다.
시장 교란도 문제다. 정부가 전기요금을 묶어두니 도매요금은 올라도 전기 사용량이 오히려 더 늘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쓰는 부자나 대기업은 더 큰 혜택을 본다. 억대 전기차를 타는 사람들은 연료비 부담을 덜지만, 서민들은 L당 2000원이 넘은 휘발유나 경유 가격 때문에 허리가 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를 강제로 끌어내리면 경제에 부작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그 부작용은 이미 나타났다. ‘에너지 요금의 정치화’와 공기업 간 ‘요금 폭탄 돌리기’를 막으려면 영국 일본처럼 가스와 전력을 통합 규제하는 독립 감독기구인 전기·가스위원회 설치와 같은 구조개혁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됐다. 경영평가에서 가스공사 실적이 정당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부총리가 직접 챙겨야 할 일이 하나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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