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전’을 쓴 조선 후기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은 ‘명론’에서 “천하의 재앙 중에 담담하여 욕심이 없는 것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고 썼다. 여기서 욕심은 욕망과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세상은 텅 빈 그릇과 같고 이를 채우려면 사람들이 욕망을 품고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회적 지위나 보상, 혹은 멋진 겉모습 등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사회를 움직이기 위해선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해야 한다는 수백 년 전의 말이 요즘만큼 어울리는 때가 없는 것 같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사람들이 욕망을 잃거나 욕망을 자극하는 동기가 지나치게 단순해서 생긴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다.
후배를 포함해 주위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즘 20, 30대 중에는 자포자기하거나 동기부여의 유일한 주체가 ‘돈’인 경우가 적지 않다. 몇몇은 “이번 생엔 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농담 한 톨 섞지 않고 담담하게 늘어놓는다. 또 다른 몇몇은 “진급도 명예도 중요치 않다. 월급이 전부”라고 말한다.
청년들의 절망과 한숨은 취업난과 구인난, 저출산 등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묵직한 짐들로 형상화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선 기성세대처럼 사는 게 불가능하다는 청년들의 마음은 대기업 쏠림으로 나타나 취업난과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가중시켰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월급만으론 집을 사기도, 가정을 꾸리기도 어렵다는 현실이 저출산 현상을 낳았다. 부동산 시장이 펄펄 끓을 때 상승장에 올라타지 못한 젊은 세대들은 가상화폐나 주식시장에서 인생 역전을 꾀했지만 승자가 많진 않아 보인다.
정부도 청년들의 욕망을 다시 끄집어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왔다. 저소득 청년을 대상으로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다양한 제도를 만들었고, 양육수당 지원책도 강화해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딱히 ‘성공작’이라 불릴 만한 대표 정책을 찾기 어렵다. 댐이 무너진 저수지에서 청년 욕망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데 정부 정책들은 댐을 보수하기보다는 흐른 물을 주워 담는 데만 급급했다는 지적도 있다.
출범과 동시에 고물가와 저성장이란 난제를 떠안은 윤석열 정부도 당장 근본적인 청년 정책에는 눈을 돌릴 여유가 없어 보인다. 생애최초 주택 구매자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80% 상향, 청년과 신혼부부 주택 대출 만기 50년으로 연장 등이 거론되고 있긴 하다. 이런 정책들은 그러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선 효과가 반감되기 쉽다. 과잉 유동성의 부작용이 심각한 마당에 무작정 현금을 풀어 청년들을 지원하기도 어렵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기업들이 지난달 잇달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일자리 확대를 공언했다는 점이다. 정부로선 청년 정책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 셈이다. 다만 기업들은 계획대로 일자리가 늘어나려면 인공지능(AI), 6세대(6G) 통신 등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청년들이 다시 의욕적으로 세상에 뛰어들 수 있도록, 미래에 희망을 채우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2인 3각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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