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솔거라는 화가가 나온다. 얼마나 그림을 잘 그렸던지 그의 그림은 신화(神畵), 즉 신이 그린 그림으로 불렸다. 그가 황룡사 벽에 그린 소나무는 비늘 같은 줄기, 구불구불한 가지 등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새들이 진짜 소나무로 착각하고 날아와 앉으려다 벽에 부딪혀 떨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솔거의 천재성을 증언하는 이야기는 새들의 입장에서 보면 슬픈 이야기다. 새들이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는 말은 그중 일부가 다쳤거나 죽었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솔거의 그림은 새들에게 불운이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불운이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새들이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 부딪혀 죽는다. 해마다 한국에서는 약 800만 마리의 새들이 죽고 미국에서는 1억∼10억 마리의 새들이 죽는다. 솔거의 시대에는 없던 유리창, 유리벽, 방음벽 등이 원인이다.
놀랍게도 솔거의 그림 이야기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있다. 까마귀, 솔개, 제비, 참새를 유혹하던 소나무 그림은 세월이 지나면서 색이 바랬다. 그러자 황룡사의 승려들이 단청으로 덧칠을 했다. 지금 같으면 원작에 손을 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들은 과감하게 손을 댔다. 그러자 새들이 벽에 부딪히는 일이 없어졌다. 새들을 생각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덧칠이 새들을 살렸다.
수억 마리의 새들이 해마다 죽는 상황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어쩌면 그러한 덧칠인지 모른다. 2022년 5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내용은 일종의 덧칠을 강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들의 눈에 잘 띄는 스티커를 건물 유리에 부착해 새들의 충돌을 막는 것은 황룡사의 승려들이 그랬듯이 인간이 만든 것에 일종의 덧칠을 하는 행위다. 그렇게라도 해서 새들을 살리자는 것이다. 조류학자 로저 피터슨의 말처럼, 새들은 “생태학적인 리트머스 시험지”다. 그들을 살리는 일이 사치가 아닌 이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