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난/해질녘 노을처럼/한 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너에게 난 나에게 넌’ 중·QR코드)
노래가 어쩜 이리 한 폭의 수채화 같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작품에도 이면이, 차마 눈 뜨고 못 볼 스토리가 있다. 노래도 다 사람이 만드는 것. 카인과 아벨 이후,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늘 다툼이 생긴다. 이 노래를 만들고 부른 트리오 ‘자전거 탄 풍경(자탄풍)’은 저 명작 때문에 하마터면 멱살잡이는 물론이고 영영 해체할 뻔했다.
#1. 팬데믹이 끝나고 무대가 우리 삶의 곁에 돌아오면서 가요계의 산 역사가 하나둘 다시 뭉치고 있다. 첫째는 ‘송골매’다.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는 라디오 DJ나 방송인으로 더 유명한 배철수 씨가 당대 최고 인기 보컬인 구창모 씨와 재결합하는, 무려 38년 만의 무대가 9월 펼쳐질 예정이다.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에서 여는 콘서트. 포스터에 찍힌 옛 고딕체의 ‘열망’ 두 글자가 강렬하다.
#2. ‘샴푸의 요정’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로 유명한 1990년대 그룹 ‘빛과 소금’도 하반기 무대를 기대해볼 만하다. 빛과 소금은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 활약하던 멤버 장기호 박성식 씨 등이 만든 그룹. 이들은 한때 ‘사랑과 평화’에 몸담아 한국적인 펑크(funk) 음악을 구사하기도 했는데, 1990년 1집에 실린 ‘샴푸의 요정’은 2020년 아이돌 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가 재해석하며 이제 해외 케이팝 팬들에게도 익숙한 노래가 됐다.
#3. 올 4월에는 영국에서 귀한 소식이 날아왔다. 전설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가 무려 28년 만에 새로운 스튜디오 녹음을 통해 신곡을 냈다. ‘Hey Hey Rise Up’이다. 전설을 다시 뭉치게 한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참혹한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전래 행진곡을 뼈대로 했고 노래는 우크라이나어로 우크라이나 가수가 불렀다. 기존의 플로이드 곡에 비하면 좀 낯선데, 곡 중반에 데이비드 길모어의 기타 솔로가 나올 때만큼은 가슴을 후벼 파는 뭔가가 밀려온다.
#4. 전설의 재결합과 귀환에는 이제 시효가 없다. 인공지능과 가상현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근년에 고 김광석, 김현식, 유재하의 목소리나 공연 모습이 실시간으로 살아나왔다. 요단강도, 발할라도, 투오넬라(핀란드의 명계)도 이제 더는 재결합의 걸림돌이 되지 못할 것이다.
어느 부유한 독지가가 있어 내게 만약 꿈의 재결합 무대 하나만 골라 기획을 맡으라고 맡긴다면? 수많은 ‘희망 재결합’ 장면이 대뇌피질을 스쳐 지나가지만 고 신해철 씨가 이끌었던 록 밴드 ‘넥스트’가 그중 도드라진다. 식상하지만 조금은 신선하게, 첫 곡은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1989년 ‘무한궤도’ 1집)로 가고 싶다.
#5. 죽음 다음으로 팀을 잘 갈라놓는 독소는 개성이다.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의 자탄풍은 개성이 화근이었다. 멤버들은 “팀보다 내가 튀는 게 중요했다. 앙상블보다 ‘내 기타 솔로’ ‘내 보컬 애드리브’를 앞세웠고 서로 ‘이 자식 놀고 있네’ ‘저 자식 또 저러고 있네’ 했다. 그게 쌓여 병이 됐다”고 했다. 세 멤버의 대(大)화해는 강인봉의 부상을 계기로 이뤄졌다. 따로 활동하던 멤버의 병문안 이후 “우리 다시 (같이) 해볼까?”라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6. 개성이란 게 그렇다. 사람 흩어놓는 데 선수이지만 한번 뭉치면 강력한 폭발을 일으키는 뇌관도 된다. ‘넥스트’의 백일몽보다 앞서 실현될 꿈의 재결합이 떠오른다. 그들답지 않은 이벤트성 신곡 하나 던진, 다름 아닌 핑크 플로이드다. 이번 결합은 반쪽짜리였다. 길모어(기타)와 닉 메이슨(드럼)은 있되 로저 워터스(베이스기타)가 빠졌으니 말이다. 뚜렷한 개성 탓에 견원지간이 돼버린 세 사람을 다시 모아줄 이벤트는 이제 지구상에 하나 남았다. 남북통일이다. 1990년, 독일의 무너진 장벽 앞에서 워터스가 펼친 전설적인 콘서트 ‘더 월―라이브 인 베를린’을 능가하는 무대는 언제쯤 현실화될까. 콘서트 장소는 개성쯤 어떨까. 개성(個性)으로 흩어진 이들을 개성(開城)에 모은다니, 웬만한 아재 개그보다 괜찮은, 인류에게 교훈을 던지는 기획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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