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군 창선도에서 섬 소년으로 자랄 때 바닷가는 놀이터였다. 여름방학 때는 수영하다가 조개, 홍합을 채취하거나 족대질로 갯가재 등을 잡아서 구워 먹으며 점심밥을 대신하기 일쑤였다. 사시사철 즐기던 놀이로는 낚시만 한 게 없었다. 그 시절엔 초등학생쯤 되면 스스로 만든 낚싯대를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대나무를 베어 말려두면 가볍고 튼튼한 낚싯대가 됐다. 밤에는 가로등 불빛이 있는 선창가에서, 공휴일에는 갯바위 낚시를 했다. 흔하게 잡힌 어종은 노래미, 볼락, 베도라치였다. 베도라치를 간혹 구워 먹기는 했지만 미끈거리는 점액질이 분비돼 만지기를 꺼리는 사람이 많았고, 대체로 먹지 않는 물고기로 인식돼 미련 없이 바다로 던졌다.
10년 전, 남해군의 해양문화를 조사할 때 이상한 형태의 낚싯대를 들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호기심에 유심히 관찰했더니 돌 틈에 낚싯바늘을 가라앉혀서 베도라치만 낚고 있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낚시꾼에게 다가갔다. 아무도 먹지 않는 베도라치를 낚아서 어디에 쓰려는지 물었더니, 횟집에 비싼 가격으로 판매한단다. 베도라치 전용 낚싯대를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베도라치 회를 먹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자 손질하기 까다롭지만, 맛을 본 사람은 다시 찾는단다.
그해에 분교를 함께 다녔던 동창들과 삼천포의 횟집에서 만난 적이 있다. 한데 어릴 때부터 낚시광이었던 친구가 베도라치 회를 주문하는 게 아닌가. 모두 미심쩍어했으나, 회 맛을 본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찬사를 쏟아냈다. 버리던 물고기가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고랑치 역시 인기 없던 물고기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물고기가 됐다. 고랑치 어획의 중심지인 부산, 경남 진해, 거제도, 통영 등지에서 등가시치(표준명)라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없다. 고랑치 혹은 꼬랑치라 부르기 때문이다. 동해 중부 이북에서 서식하는 냉수성 어종인 장갱이(농어목 장갱잇과)와 장치라 불리는 벌레문치(농어목 등가시칫과) 등이 고랑치와 유사하게 생겨서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고랑치는 우리나라 전 연안에 서식하지만 주로 남해안의 강 하구 기수역에서 많이 잡힌다. 장갱이와 장치 회는 수분이 많아서 식감이 무른 반면 고랑치는 담백하고 상대적으로 꼬들꼬들해 이맘때쯤 산지를 찾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낙동강 하구의 명지, 다대포, 가덕도 등지가 주산지인데 보리가 익는 시기에 많이 잡혀서 ‘보리누름에 고랑치’라는 말이 있다. 이곳 어민들은 매년 4월에서 7월까지는 고랑치 어획으로 바쁜 나날을 보낸다. 과거에는 시장성이 없어서 버리거나 사료용으로 싼값에 판매했다고 한다. 가격 형성이 되지 않아서 위판장에서 취급조차 하지 않았으며, 선원들이 미역국에 넣어서 먹는 정도였다. 가덕도의 어민과 횟집 주인장에 의하면 2005년 무렵부터 횟감으로 이용되면서 상업성 있는 물고기가 됐단다. 요즘은 kg당 위판 가격이 1만 원을 훌쩍 넘었고, 소비자 가격은 2만5000원 내외로 형성될 정도로 비싼 물고기가 됐다. 대량으로 잡히는 어종이 아니므로 산지에서 대부분 소비돼 내륙에서 보기 어렵다.
광어, 우럭 등 흰 살 횟감을 즐겼으나 요즘은 방어, 고등어 등 붉은 살 생선회 선호도가 높아졌듯이, 한때 고급 생선이 양식되면서 가치가 떨어지는가 하면, 버리던 물고기가 귀한 대접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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