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 논쟁’에 대해 꼬리를 무는 궁금증[폴 카버 한국 블로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0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미세한 차이로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상황을 깻잎 한 장 차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운전을 멀쩡히 하다가 갑자기 끼어들어 큰 사고를 낼 뻔한 얌체 운전자를 보면서 깻잎 한 장 차이로 사고를 피했다고 얘기하는 상황이 그렇다. 그렇게 미묘한 차이를 얇고도 얇은 깻잎 한 장으로 표현하는 한국말은 참으로 귀엽고 재치 있는 언어인 것 같다. 그런데 이 깻잎이 최근에 연인 사이에서 커다란 사고를 낼 수도 있는 상황을 묘사하는 ‘깻잎 논쟁’에 끼어들었다. 매우 ‘핫’한 주제가 됐다. 자고로 모든 일이 깻잎 두께만 한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기는 하지만, 고작 깻잎에서 유래한 행동이 연인이나 심지어는 부부 사이 심한 싸움을 일으키기도 한다. 필자도 이 논쟁에 휘말려 본 적이 있기에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한국에 정착한 지 15년째인 필자는 웬만한 일은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깻잎 논쟁에 대한 정답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무방비 상태에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깻잎 논쟁’을 아직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아주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나와 나의 소중한 누군가, 그리고 그 누군가의 동성 절친 등 3명이 함께 깻잎 장아찌를 먹다가, 이 동성 절친이 깻잎을 못 떼는 바람에 깻잎을 뗄 수 있도록 내가 도움을 준 행동이 내 소중한 누군가에게 큰 실례가 될 수 있는지가 이 ‘깻잎 논쟁’의 핵심이다.

나와 그 절친분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서 내가 도와주는 것이 가장 편리한 상황이라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나의 의견이었는데 역시나 오답이었다. ‘내 소중한 분’의 훈계는, 상대가 도움을 먼저 요청하지 않는다면 내가 먼저 도와주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안 되는 일이란 것이다. 또 내가 비슷한 행동을 할 경우 무관용의 원칙이 적용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도 했다.

깻잎 한 장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어서 한국에 거주하는 영국 친구 여러 명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대부분 나와 비슷한 생각이었다. 깻잎을 떼어주는 행위가 상대에게 구애의 행동으로 의심받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영국인들이 이 논쟁의 뭔가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어서 한국인들의 눈엔 모두 잘못된 사고를 하고 있는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문화적 차이의 근본적 이유를 찾아내려면 수년에 걸친 문화 연구와 실험들이 필수적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어찌 됐든, 이 ‘깻잎 논쟁’으로 촉발된 나의 궁금증은 비슷한 다른 사례를 발견하게 만들었다. 연인 앞에서 연인의 동성 절친에게 새우를 까주는 행태, 롱패딩 지퍼를 올려주는 행위, 휴대전화나 현관문 비번을 옛 애인의 생일로 유지하는 행동 등이 몇몇 사례로 인터넷에 설명되어 있었다. 비슷한 주제의 사회 실험적 내용을 다룬 유튜브를 보면 실제로 자신이 당했을 때 대부분의 실험 대상들은 기분이 언짢았다고 밝히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몇몇 행동은 의도에 따라서는 연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행동들은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게 되는 행동들, 예를 들면 나무젓가락 포장지를 벗겨주거나, 캔맥주를 따주거나, 귤껍질을 까주거나, 식당에서 물을 따라주거나 냅킨을 건네주거나, 파전이나 피자를 먹을 때 깔끔하게 잘라지지 않은 채로 배달이 되어서 어쩌다 내 소중한 사람의 절친과 협력하게 되는 행위까지도 오해를 살까 봐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인지, 나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필자는 다행히도 깻잎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분들에게 고수가 호불호 갈리는 향신료인 것과 비슷한 이유일 듯싶다. 깻잎쌈도 절대 먹지 않지만 회덮밥에 분쇄한 것처럼 가늘게 올려져 있는 깻잎은 참고 먹는 정도이다. 김밥에 깻잎이 말려 있으면 이리저리 젓가락을 놀려서 열심히 떼고 먹는데 혹시나 이런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도 절대 깻잎을 빼주신다고 도움을 주시거나 나 대신 떼어진 깻잎을 처리해준다고 하지 마실 것을 강력히 당부드린다. 누군가의 ‘깻잎 도움’이 내 소중한 사람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이 있다면 차라리 혼밥을 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깻잎 논쟁#꼬리를 무는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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