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신촌 거리에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골목마다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 빠진 것처럼 텅 빈 가게들만 지난 2년간의 세상을 암시하듯 서 있었다. 젊은이들은 세상이 어찌 되든 그 순간만은 즐거워 보였다. 그 거리에 으레 있던 누군가가 없었다. 떠올리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홍대 막걸리 아저씨였다.
홍대나 신촌의 밤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면 ‘막걸리 아저씨’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저씨는 막걸리가 가득 찬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막걸리를 판다. 대사는 간단하다. “막걸리 있어요. 막걸리!” “막걸리 한번 먹어봐!” “알라뷰!” 차림도 늘 같다. 헐렁한 셔츠와 청바지. 셔츠도 청바지도 상당히 낡아서 원래 색을 알아볼 수 없다. 옷에는 찢었는지 찢어졌는지 모를 구멍들이 나 있다. 그 사이로 노동이 만든 단단한 근육이 보인다. 아저씨는 늘 그 차림으로 합정에서 신촌까지 리어카를 끌며 사람들에게 막걸리를 팔았다.
막걸리 아저씨는 밤새 바깥에서 술을 마셔도 안전한 한국의 산물이다. 젊은 사람들이 술김에 그 아저씨에게 막걸리를 사서 놀이터 같은 곳에 앉아 마시곤 했다. 코로나19는 바로 그 문화에 타격을 입혔다. 그 문화를 좋아하지는 않으나 막걸리 아저씨가 사라진 건 마음이 무거웠다. 막걸리 아저씨가 그걸 안 하시면 뭘 하시려나 싶었다.
“아직 있어요. 내가 최근에 봤어요.” 신촌에서 20년 넘게 고깃집을 하셨다는 사장님께 고기를 굽다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괜히 안도하고 며칠 후 해질 무렵 합정동에서, 먹태와 맥주를 마시는데 꿈결 같은 종소리가 들려왔다. 일행에게 양해도 못 구하고 뛰어 나갔다. 막걸리 아저씨가 서 있었다. 차림, 리어카, 대사, 다 똑같았다. “막걸리 있어요. 막걸리!”
몇 년 전 일이다. 의미 없는 야근을 하고 동네에 돌아오니 자정이 넘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려나 싶어 힘이 빠졌다. 그때 막걸리 아저씨를 보았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 시시포스의 바위를 미는 듯한 모양새로 리어카를 끌고 있었다. 내가 스무 살 때 본 그때 그 모습이었다. 홀린 듯 아저씨께 다가갔다. 오만하고 죄송스러우나 1만 원을 드렸다. 늦은 시간에 고생하신다고. 제가 술은 안 마시니 마음만 받으시라고. 아저씨는 한사코 막걸리를 주셨다. “그러는 거 아니에요”라면서. 지금 생각하니 그게 하루하루 발 딛고 일하는 사람의 존엄이었다. 지난주의 막걸리 아저씨는 그때와 똑같았다. 모자 밑 머리카락만 달랐다. 이제 새하얀 색이었다.
아저씨를 만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막걸리 아저씨 사진을 올리고 질문을 붙였다. 막걸리 아저씨와의 추억이 있나요? 열 개 넘는 답이 왔다. 20년 넘게 봤다, 마지막 술자리는 이 아저씨 막걸리였다, 늘 유쾌하시다, 그새 홍대가 많이 변했다. 변한 게 홍대뿐일까. 스마트폰과 전기차와 신규 대기업과 신종 역병이 세계의 흐름을 바꿨다. 몇몇이 그 흐름을 타고 영웅이나 사기꾼 혹은 그 사이의 무엇인가가 되었다. 어떤 막걸리는 고급술로 태어나 새침한 대도시 멋쟁이도 종종 고가 막걸리를 마신다. 막걸리 아저씨는 그 사이에서 그저 리어카를 끈다. 여전히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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