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가 27위로 1년 전보다 4계단 내려앉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63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결과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보다 코로나19 경제 충격을 덜 받았던 재작년과 작년에 23위를 유지하다가 3년 만에 순위가 하락했다. 원유·원자재 인플레이션, 미국 긴축으로 인한 경기침체 등 동시에 닥쳐오는 악재를 버텨낼 경제 체력이 약화됐다는 뜻이다.
특히 올해 한국 정부의 효율성 순위는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하락했다. 평가항목 중 재정 분야 순위가 6계단, ‘연금이 잘 적립되는 정도’ 순위가 15계단 떨어진 영향이 컸다. 재정 순위의 하락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재작년 43.8%에서 작년 47.3%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연금 순위 급락은 2050년대 중반 고갈이 확실시되는 국민연금 개혁 등에 진척이 없어서다. 정책의 투명성, 정책이 경제 변화에 잘 적응했는지에 대한 평가도 모두 나빠졌다. 정부가 국가경쟁력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가파른 임금 상승 등의 영향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한 한국 기업의 노동생산성 순위도 5계단 급락했다.
문제는 내년에도 국가경쟁력, 정부 효율이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에는 사상 최대 본예산에 5월까지 2차례 추가경정예산까지 더해져 국가채무 비율이 50%에 육박할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첫해에 나랏빚을 법률로 관리할 새 재정준칙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없어 연내 국회 통과 가능성은 미지수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3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연금개혁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구체적인 개혁의 시간표는 나오지 않았고, 개혁안을 논의할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둘지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았다.
작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으로 분류하면서 한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격상됐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선진국 그룹에서 재정준칙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터키뿐이다. 30년 뒤 완전히 바닥날 연금제도를 방치하는 선진국도 찾아보기 어렵다. 후진적인 재정·연금 정책과 제도가 국가경쟁력을 더 망가뜨리기 전에 개혁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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