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게 행동하되 도덕 준수하는 게 자율
총장 직인 크기까지 제한한 사립대 규제
자율을 격려·지원해야 세계적 대학 나온다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은 비교적 짧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무려 서른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이렇게 강조된 자유는 인류가 근세에 접어들어서야 피를 흘려 쟁취한 더없이 귀중한 기본 인권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자유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저항이었다. 미국 남북전쟁은 자유를 속박하는 노예제도가 빌미였다. 그리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6·25전쟁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자유에서 연상된 것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는 우리 헌법 제21조 1항이다. 참으로 소중한 국가 규범이다. 이와 더불어 법정 스님이 오래전에 이야기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이란 글귀도 떠오른다. 해탈에 이른 종교인(宗敎人)만이 향유할 수 있는 차원이 다른 자유일 것이다. 온갖 욕망을 모두 내려놓아야 다가갈 수 있는 경지다.
그렇기에 어떤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자유는 사회 속의 개인이나 조직이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 같은 자유를 누리면서 스스로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언론이나 집회 등은 사회를 어지럽힐 뿐이다. 마땅히 제어되어야 한다. 실제로 헌법 제21조 3항은 자유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 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아니된다”이다. 결국 우리가 소중히 가꾸어야 할 가치는 스스로의 의지로 자유롭게 행동하되 객관적인 도덕을 준수하는 일이다. 즉, 자율(自律)이다.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 모든 조직이 자율성을 갖고 움직일 때 국가는 발전한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이라면 거침없이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극소화하기 위해 정부는 법률을 통해 기업을 규제하고 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규제가 심해지면 경제는 생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문화, 예술, 관광, 의료 등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다. 새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규제를 철폐한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부디 효과를 체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특히 사립대들은 규제로 인해 질식에 가까운 상태다. 어느 나라건 사립의 가치는 각기 고유한 건학 이념 속에서 특색 있는 교육과 학교 운영으로 다양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있다. 21세기 국가 발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과도한 규제로 다양성은 사라졌고 사립대는 획일화되었다. 소위 사학 비리를 막기 위한 규제들인데, 이제는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다 태운 꼴이다.
사립대의 경우, 총장 직인은 한 변의 길이가 3.0cm 그리고 학장 직인은 2.7cm인 정사각형에 한글 전서체로 가로로 새겨야 한다. 교육부 규정이다. 대학은 이런 자질구레한 사항까지 관리받고 있는 지극히 초라한 존재다. 더욱 큰 문제는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손발은 물론 손가락 발가락까지 묶여 있는 것을 대학들이 자각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총장 임기가 4년 이내인 것도 사립대학법이 규정하고 있다. 어떤 대학은 총장 임기가 7년이고 또 다른 대학은 아예 임기가 없으면 왜 안 되나? 일반적으로 공기업 대표는 임기가 있지만 사기업은 임기가 없다. 성과가 부진하면 대표자를 일찍 교체하고 성과가 좋으면 얼마든지 길게 일할 수 있는 사기업이 공기업보다 더 효율적임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규제는 교육부만이 아니라 국회도 매우 쉽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초에는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 10명이 사립대학교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학생과 교직원이 참여하는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직선제가 학내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다. 타당한 측면도 있겠지만 직선제 그 자체가 학내 갈등의 주요 원인인 대학도 상당수다. 해당 발의는 두 주일 지나 철회되었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또 다른 엄청난 규제로 남을 뻔했다.
세계 무대에서의 경쟁이라는 측면에선 대학이나 프로축구팀은 마찬가지다. 프로팀 감독을 선수들 중에서 직선으로 선출하면 어떻게 될까? 그런 감독이 파격적인 연봉으로 우수 선수를 초빙하거나 실력이 못 미치는 선수를 내보낼 수 있을까? 감독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일은 동네 축구팀에는 적합하지만 프로팀에서는 전혀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동네 대학이 아니라 세계적인 대학을 키우고 싶다면, 법으로 모든 대학을 하나의 틀에 묶는 일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대학의 자율을 사회가 격려하고 지원해야 한다. 오늘의 대학 경쟁력은 미래의 국가 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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