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여행을 하다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머니나 할머니가 해 주신 밥이 그립다 한다. 이제껏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해 주신 음식이 그립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이처럼 가정에서는 대부분 여성이 요리를 하고, 많은 이들의 솔푸드(soul food)에 대한 기억 또한 어머니나 할머니에서 기인한다. 한데 이상하게도 미슐랭 가이드북,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등에 이름을 올린 세계적인 셰프 중 여성 비율은 지극히 낮다. 프랑스만 해도 600개가 넘는 스타 레스토랑 중 여성 셰프가 지휘하는 레스토랑 수는 10%에 못 미친다.
레스토랑에 남성 셰프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로는 우선 노동 강도가 높아 남성에게 유리하다는 점이다. 프랑스 가스트로노미 레스토랑에서 가장 아래 단계인 코미부터 최고의 경지인 셰프까지 올라가는 데 보통 10∼15년이 걸리는데, 이 기간 동안 겪어야 하는 엄격한 규율 체계와 암묵적으로 행해지는 육체적, 언어적 폭력을 이겨내는 데 남성이 상대적으로 유리한 이유도 있다. 육아의 부담 역시 상대적으로 여성 셰프가 활동하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미식계는 프랑스 출신의 두 여성 셰프를 주목하고 있다. 안소피 피크는 자신이 운영하는 ‘메종피크’(사진)를 프랑스 출신 여성 셰프 중 네 번째로 미슐랭 3스타에 올려놓았다. 이 레스토랑은 2011년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에 올랐다. 럭셔리 마케터가 되기 위해 일본과 미국으로 건너가 카르티에 등에서 커리어를 쌓던 그는 23세에 아버지의 부름으로 요리계에 입문했다. 안타깝게도 3개월 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룬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물려받아 운영했다. 연륜 부족으로 처음엔 별을 두 개나 잃었지만 2007년에 다시 미슐랭 3스타를 회복했다. 이후 레스토랑 3곳에서 추가로 미슐랭 스타를 받으며 여성 셰프로는 가장 많은 수의 미슐랭 레스토랑 셰프로 등극했다.
또 다른 여성 셰프인 엘렌 다로즈는 파리의 ‘마르상’과 런던의 ‘코노트’를 지휘하는 미슐랭 1스타 셰프로 2015년 월드 베스트 50 레스토랑에서 선정됐다. 그는 4대째 셰프 집안에서 자랐다. 증조부가 1895년 세운 ‘르 를레’를 아버지와 삼촌이 이어받아 발전시켰고, 사촌은 엘리제궁의 요리사로 알려졌다. 세프 버섯, 푸아그라 등 고향 특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그의 특기다. 이 밖에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아르사크’의 후안 마리 아르사크, 스페인 ‘산트 파우’의 카르메 루스카예다 등 여성 셰프가 세계 미식계를 주도하고 있다.
3년 전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마담피크에 들러 정찬을 즐겼을 때의 행복감을 지울 수 없다. 여성 셰프가 운영하는 공간답게 잘 가꾸어 놓은 테라스와 화려함과 섬세함이 느껴지는 모던하고 안락한 실내 공간, 그리고 섬세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플레이팅과 아름다운 터치가 돋보였던 음식의 완벽한 하모니는 죽기 전 꼭 경험해야 할 식사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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