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잡스, 가난한 싱글맘 롤링, 남편 사별한 샌드버그
삶의 경험 전하는 축사가 인생 스타트라인 젊은이들에게 통한다
리더들이 말하는 성공적인 졸업 연설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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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졸업 시즌입니다. 우리나라는 2월 졸업식이 일반적이지만 미국 고등학교 대학교들은 봄 학기가 끝나는 5,6월에 엽니다. 최근 몇 년간 팬데믹 때문에 행사를 취소하거나 온라인으로 축소했던 학교들은 올해는 모처럼 정식 졸업식을 열고 있습니다.
졸업식에서 가장 주목받는 순서는 축사입니다.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한 커뮤니티 컬리지 졸업식 축사에서 한국계 학생을 언급하며 격려했습니다. 졸업 시즌이 되면 축사를 할 유명 인사를 섭외하기 위한 학교들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집니다. 기업가, 사회운동가, 연예인이 연사로 인기가 높습니다. 정치인은 연설력은 뛰어나지만 졸업식 무대에서는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졸업은 ’commencement(커멘스먼트)‘라고 합니다. ’graduation‘이라고도 하지만 새로운 출발이라는 의미로 ’commencement‘를 더 많이 씁니다. ’commence‘는 ’시작하다‘는 뜻입니다. 인생 스타트라인에 선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졸업 축사들을 모아봤습니다.
“You might never fail on the scale I did, but some failure in life is inevitable.” (여러분들이 나와 같은 실패를 겪을 일이야 없겠지만 인생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축사가 훌륭한 축사일까요. 희망, 도전 의식을 고취시키는 거창한 단어들로 장식된 축사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설은 감동을 주기 힘들다고 CNN 방송은 최근 축사 분석 기사에서 전했습니다. 졸업생들은 투박하더라도 연사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가 담긴 축사를 원한다고 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은 2008년 하버드대 졸업식에서 그런 연설을 했습니다. 롤링의 축사는 하버드대에서 레전드급으로 통합니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역사상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했습니다. ’Very Good Lives(매우 좋은 삶)‘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까지 됐습니다.
롤링은 노숙자로 내몰릴 정도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싱글맘 무명작가로 겪은 고통을 털어놓았습니다. 언론은 롤링의 축사에 대해 “brutally honest(잔인할 정도로 솔직하다)”고 평했습니다. 축사로는 “too dark(너무 어둡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최고 학벌인 하버드대 졸업생들이 롤링처럼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실패를 경험할 확률은 높지 않았습니다. 롤링은 “여러분들이 나와 같은 정도의 실패를 경험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실패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롤링의 메시지는 “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scale‘은 ’범위‘ ’등급‘을 의미합니다. ’저울‘ ’체중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미국인과 대화할 때는 수준이나 등급을 매기는 식의 질문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On a scale of one(1) to ten(10), how would you rate?”로 시작하는 질문입니다. “10점 만점에 몇 점?”이라는 뜻입니다. 롤링도 비슷한 의미로 “on the scale”이라고 했습니다.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라는 뜻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잃을 것을 따지는 함정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방법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 참석해 연설을 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는 연설 실력을 가진 잡스에게는 유일한 졸업식 축사였습니다. 아이팟으로 히트를 친 뒤 조만간 선보일 아이폰에 관심이 집중된 때였습니다.
잡스의 연설은 일반적인 축사와 많이 달랐습니다. 축사의 금기어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언급했습니다. 도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잡스는 “도전을 꺼리는 것은 중요한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며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면 그런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003년 췌장암 진단을 받은 잡스의 투병 사실은 당시 널리 알려진 상태였습니다. 잡스가 죽음을 언급하자 장내가 숙연해지면서 일순간에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잡스가 졸업생들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졸업생들이 잡스를 격려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도 좋습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생명의 유한함을 아는 당신은 이미 벌거벗은 상태다. 진심이 원하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Not everything that happens to us happens because of us.”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 때문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사임을 발표한 셰릴 샌드버그 메타플랫폼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오늘날의 페이스북을 키운 일등공신입니다. 2016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대) 졸업식 연설에서 남편을 잃은 사연을 공개하며 ’3P의 함정‘을 역설했습니다. 이를 극복해야만 인생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샌드버그가 말하는 3P는 Personalization(개인화), Pervasiveness(확장성), Permanence(영속성)를 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문제에 부딪히면 자신의 잘못이라고 개인화하고, 문제가 삶의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고 확대시켜 생각하며, 문제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다는 합니다. 샌드버그는 남편을 급성 심장부정맥으로 떠나보낸 사연을 전하며 한동안 자신도 3P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지만 원인 제공자가 우리 자신이 아닐 때도 많으니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나라는 메시지입니다.
● 명언의 품격
졸업식에서 축사만큼 주목받는 것은 졸업생 대표의 고별사입니다. 졸업생 대표 자격으로 연설한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만큼 대표로 선발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합니다. 미국을 이끄는 리더 중에는 졸업생 대표 출신들이 많습니다. 1969년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웰즐리대 졸업생 대표 연설은 언론에 앞 다퉈 소개됐을 정도로 내용이 뛰어납니다.
“God gave you a voice. Use it.” (신은 당신에게 목소리를 줬다. 써라)
지난달 플로리다 주 롤린스 컬리지 졸업식에서 엘리자베스 봉커 씨는 졸업생 대표로 연설을 했습니다. 그의 연설은 약간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그는 비언어적 자폐 증세(non-speaking autism)를 가지고 있습니다. 생후 15개월 때 언어 능력을 상실하면서 자폐 진단을 받았다는 봉커 씨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텍스트를 쓰면 컴퓨터가 음성으로 전환했습니다.
연설의 하이라이트는 “신은 당신에게 목소리를 줬다. 써라”는 대목입니다. 컴퓨터 음성이 전하는 “목소리를 써라”는 구절은 묘한 울림을 줬습니다. 봉커 씨는 “말의 귀중함을 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목소리를 쓴다는 것은 단순히 “speak”(말하다)를 넘어서 “communicate”(소통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 실전 보케 360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연일 지지율 최저치를 갱신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인기 회복을 위한 특단의 조치로 최근 심야토크쇼에 출연했습니다. 말실수를 잘 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순발력이 중요한 토크쇼 출연 제의를 모두 거절해오다가 큰맘 먹고 ABC 방송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에 초대손님으로 나왔습니다. 노쇠해 보이고 말을 더듬기는 했지만 ’대형사고‘ 없이 무사히 출연을 마쳤습니다.
“Inflation is the bane of our existence.” (인플레이션은 골칫거리다)
토크쇼에서 총기규제, 기후변화, 인플레이션 등 심각한 주제들이 다뤄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의 심각성은 인정하면서도 별다른 처방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대통령은 인플레 상황을 설명하면서 ’bane(배인)‘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미국인들은 많이 쓰는데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단어입니다. 원래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해 ’악‘ ’고통‘ ’골칫거리‘ 등의 뜻입니다.
’bane‘ 활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boon or bane‘입니다. ’득이냐, 실이냐‘ ’축복이냐 저주이냐‘의 뜻입니다. “Is technology boon or bane?”(기술이 선이냐 악이냐)는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둘째,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bane of existence‘ ’bane of life‘라는 표현도 자주 씁니다. “골머리를 앓다” “애를 먹이다”는 뜻입니다. 프로젝트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면 “This project is the bane of my existence”이라고 하면 됩니다.
●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에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9년 1월 22일 소개된 심야토크쇼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후 10시,11시가 되면 TV에서 심야토크쇼를 시작할 시간입니다. 저녁 뉴스만큼이나 방송사들의 심야토크쇼 경쟁도 치열합니다. CBS 방송의 ’더 레이트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는 토크쇼들 중에서 가장 많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화제성도 큽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신랄하고 유쾌한 조롱 덕분에 인기가 높습니다.
“The T is silent. Like you were during the Roger Ailes scandal.” (철자 T는 침묵해야 돼. 당신이 로저 에일스 스캔들 때 침묵했던 것처럼 말이야)
콜베어(Colbert)는 발음이 독특합니다. 철자 ’t‘가 묵음이라서 ’콜버트‘가 아니라 ’콜베어‘로 발음해야 합니다. 그런데 친(親) 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의 브라이언 킬미드 앵커는 기어코 ’콜버트‘라고 발음합니다. 은근히 무시하는 거죠. 기분이 상한 콜베어가 킬미드에게 한방 먹입니다. “내 이름에서 T는 침묵해야 돼. 당신이 로저 에일스 스캔들 때 침묵했던 것처럼 말이야.” 폭스뉴스 최고경영자 로저 에일스의 직장 내 성희롱 스캔들이 터졌을 때 상당수 직원들이 에일스를 비판했지만 킬미드는 침묵을 지킨 것을 비꼬는 겁니다. 발음이 되지 않는 묵음을 ’silent(침묵)‘라고 합니다.
“Whoa! Pump the brakes.” (잠깐! 천천히 갑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우리는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김 위원장은 기분이 어땠을까요. 콜베어가 김 위원장의 속마음을 들여다봤습니다. 단 한 번 만난 것이 전부인 70대 아저씨(혹은 할아버지)로부터 사랑 고백을 받은 김 위원장은 아마 당혹스러웠을 겁니다. “잠깐! (우리 사랑을) 천천히 이어가자”며 상대의 열렬한 구애를 피하고 싶겠죠. ’pump the brakes‘는 위험한 도로 상황에서 운전할 때 반복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아 가며 속도를 줄이는 것을 말합니다.
“I’m a manila envelope taped to a beige wall.” (나는 투명인간이야)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 지도부를 수차례 백악관으로 불러 설득 작전을 폈습니다. 회동은 ‘토크 배틀’ 난타전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는 웃긴 장면이 연출됐습니다. 콜베어가 펜스 부통령의 속마음을 읽어봤습니다. “나는 투명인간이야.” 난장판에 끼어들어 트럼프 대통령을 돕느니 차라리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이라는 겁니다. 베이지 색깔의 벽에 붙여놓은 노란색 마닐라 봉투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존재감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언론은 “목석처럼 앉아있는 펜스 부통령이 오히려 더 눈에 잘 띄었다”고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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