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스포츠계의 핫이슈는 PGA투어와 LIV 골프 간의 갈등이다. 세계 남자 골프의 패권을 지키려는 106년 전통의 미국프로골프(PGA)에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의 후원을 받는 신생 투어가 정면 도전에 나섰다. 처음에는 LIV 골프가 망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하지만 전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 등이 잇따라 PGA를 탈퇴하고 LIV에 합류하면서 예측은 빗나갔다. PGA를 수호하기보다는 오일 머니의 수혜를 누리겠다는 선수가 의외로 많았던 것. LIV를 돈 잔치라고 비난해 온 PGA 간판스타 로리 매킬로이가 “내 예상이 틀렸다”고 할 정도다.
필자는 PGA와 LIV의 충돌과 예상치 못한 상황 전개를 보면서 국제 정치 질서, 특히 한미동맹의 향후 모습이 자주 오버랩된다. PGA가 전통과 스포츠맨십을 중시하는 일종의 가치 동맹이라면 LIV는 돈이 최고 기준인 이익 동맹. 과연 미래의 한미동맹은 둘 중 어느 쪽에 가까울까 하는 것이다.
한 달 전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거론하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다. 기존 안보 동맹에서 가치 동맹, 더 나아가 반도체와 공급망 이슈를 함께 고민하는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격상시키자고 합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한 번 했다고 갑자기 최상위 수준의 동맹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회담 결과를 집행하기 위한 액션 플랜을 짜는 건 지금부터다. 한미 정상회담 후 본격화되고 있는 전 세계적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중국이라는 리스크 관리에 글로벌 동맹 격상에 따른 미국의 청구서를 의식해야 한다는 우려도 엄존하고 있다.
특히 요새 한미 외교가에선 바이든의 정치적 입지에 따라 한미동맹의 미래가 출렁일 수 있다는 말이 확산되고 있다. 한미 정상의 임기 사이클이 서로 다른 데 따른 것이다. 윤 대통령이야 임기 시작한 지 한 달여 지났지만 취임한 지 1년 반 넘은 팔순의 바이든은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결과에 따라 2024년 재선 가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바이든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신저가를 경신 중일 정도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17일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와 야후뉴스의 차기 대선 조사에서 바이든은 42%,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4%를 얻었다. 바이든이 18일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게 그의 정치적·신체적 상태와 얽혀 조롱 섞인 화제가 되는 건 이런 흐름과 결코 무관치 않다.
윤 대통령의 핵심 외교 참모는 최근 필자에게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바이든이 중간선거에서 패하면 미국은 급속히 차기 대선 모드로 전환된다. 트럼프 또는 그 추종 세력이 집권이라도 하면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포함해 안보의 틀을 새로 짤 수도 있다. 진짜 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이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에서 폭로한 트럼프의 “주한미군 철수하겠다”류의 발언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것. 피로 엮인 한미동맹을 LIV 골프보다 더 저열하게 돈의 잣대로 뒤흔드는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새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주변에선 “대통령 바뀐 뒤로 한국에 대한 워싱턴의 인식이 달라졌다”는 자화자찬이 자주 들린다. 정작 백악관은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향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11월 미 중간선거 이후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외교 문제만큼은 섣부른 정신 승리를 멀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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