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5원 오른 1301.8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300원 선을 넘어선 것은 2009년 7월 이후 약 13년 만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제롬 파월 의장이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경기 침체 가능성을 공식 언급한 것이 환율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올 1월만 해도 120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이 5개월 만에 100원가량 급등한 것은 미국의 긴축 움직임으로 한미 금리가 역전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3월부터 미국이 금리를 높인 결과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 기조가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환차손을 우려한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 투자한 돈을 빼내면서 환율이 추가 상승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고환율은 수출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글로벌 경기가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오는 기업의 비용 부담만 키우는 악재로 작용한다. 유류비를 달러로 결제하는 항공사들은 이미 환율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제2금융권과 민간 기업이 해외에서 조달한 대외채무가 급증하면서 상환 부담이 늘어난 점도 문제다. 환율이 단기간 크게 오른 영향으로 민간 영역에서 부실이 생길 위험이 커졌다.
올 들어 기획재정부는 환율이 오를 때마다 구두 개입에 나서거나 보유외환을 매도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어제도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시장 안정 노력을 하겠다”고 했지만 환율을 방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은행은 과거 한미 금리 역전기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된 사례를 들며 자본 유출 우려에 선을 긋고 있다.
최근 외국인이 국내 주식에서 발을 빼고 채권 투자를 줄이는데도 정부와 한은이 상황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닌가. 1997년과 2008년의 경제위기는 환율 급등과 자본 유출에 따른 신용 경색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것을 막지 못해 생긴 비극이었다. 당국은 ‘셀 코리아’ 움직임이 봇물처럼 터지기 전 외환시장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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