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6은 학생운동 대표세력이 아니라
정치지향적 소수 中 적응력 뛰어난 소수
낡은 세계관, 절차 정당성 무시 투쟁관 등
진보의 새로운 미래에 걸림돌
“월북이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하냐”고 열변을 토하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의 모습은 정치가 사람을 얼마나 바꿔놓는지를 절감케 한다.
요즘의 우상호에게서 1987년 6월 항쟁 직후 이한열 열사 영결식에서 오열하던 청년을 연상하는 건 쉽지 않다.
사실 그의 변모를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 장면은 대선 직전인 2월 20일이었다.
선대위 총괄본부장 우상호는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후보가 대장동 비리의 뒷배를 봐준 흑기사라고 볼 수 밖에 없다”며 대장동 녹취록을 공개했다.
△(김만배) “윤석열 영장 들어오면 윤석열은 죽어.” △(정영학) “죽죠. 원래 죄가 많은 사람이긴 해. 윤석열은…” △(김만배) “되게 좋으신 분이야. 나한테도 꼭 잡으면서 ‘내가 우리 김 부장 잘 아는데, 위험하지 않게 해’”.
그런데 곧 녹취록의 실체가 드러났다. 편집돼 잘린 앞뒤 문맥을 복원하니 ‘윤 후보가 사법농단 수사로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에 뭐라도 걸리면 판사들에 의해 죽는다’는 취지였고, ‘좋으신 분’ ‘우리 김 부장’ 대목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것으로 봐야 마땅한 내용이었다.
당시 필자는 우상호가 녹취록 ‘편집’ 사실을 몰랐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1986년 ‘송충이’라는 시로 대학 학보사 문학상을 받았던 문학청년이 조작된 내용을 뻔뻔하게 발표할 수 있을 만큼 변질될 수 있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상호는 “내가 국문과 출신”이라며 “뭐가 조작이냐”고 강변했다.
그런 모습은 이젠 정말 586들이 진보정치의 앞날을 위해 사라져 줘야 함을 웅변해 준다. 586에 대해 흔히들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고 내로남불일 수 있나”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런 비판엔 오류가 있다. 586을 민주화 주도세력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정확치 않기 때문이다.
전두환 군부독재 치하이던 1980년대 중반 당시 주요 대학 운동권의 핵심 지도부는 지하에서 익명으로 활동했다. 북한의 대남방송을 단파라디오로 들으며 ‘강철서신’을 작성해 운동권에 회람시켰던 구국학생연맹 의장 서울대 김영환 씨 등이 대표적이다. 김 씨는 1991년 김일성이 보낸 잠수정을 타고 평양에 가 김일성을 만난 뒤 주체사상과 북한의 실체에 대한 환각에서 깨어나면서 전향해 북한인권 운동가로 전향했다.
물론 진정한 학생운동의 주역은 대다수 무명의 학생들이었다. 직격탄의 위험을 무릅쓰고 시위의 선두에 섰다. 강제연행 고문 구타 등으로 평생 병마에 시달리거나 이름 없이 죽어간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상당수는 기득권을 버리고 노동현장 등 민중 속으로 갔다.
현재 586 정치인들 가운데 그런 길을 걸은 이는 많지 않다. 대부분 학생회 등 공개조직 장(長) 출신들로 옥고를 치른 뒤 현역 정치 거물들에 스카우트되거나 의원 보좌관 비서 등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어느 공동체든 앞에 나서 사람을 모으고 연설하고 이끌고 가는 걸 좋아하는 정치지향적인 인물들이 있는데, 그런 성향과 독재에 대한 항거 의지가 결합된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게 386 중 극소수가 정치에 뛰어들었고, 수십 년간 진화론의 적자생존과 도태 과정처럼 변신과 현실적응력이 뛰어난 이들이 살아남아 다선 의원이 된 것이다.
즉, 586은 민주화운동 세력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386이라는 뿌리에서 출발해 현실정치판에서 생존한 소수의 변종그룹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뻔뻔함도 386세대 자체가 뻔뻔한 특성을 가져서가 아니라, 그런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권력층에 집결한 결과물이다.
엄혹한 독재폭력에 맞선 상황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면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게 상식이나 도덕에 지나치게 배치되면 주저하게 마련인데, 그런 거리낌을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강한 멘털의 소유자들이 문재인 정권에 포진했다.
그 결과 그들은 최고 권력자가 방향을 설정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로매진했다. 피살된 국민을 단호하게 월북자로 낙인찍을 수 있었던 것도 ‘남북관계 치적’이라는 대통령의 목표가 혁명군에 하달된 테제처럼 전체를 압도해 국가권력이 한 방향으로 달려간 결과물일 것이다. 이 사건 외에도 목적 달성을 위해 팩트를 마사지하고 절차를 어긴 행각들은 앞으로도 숱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제는 절차와 수단, 상식을 무시하고라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586식의 정치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다. 당장은 손해여도 가치 원칙을 택하는 쪽이 승자가 되는 세상이다.
586들이 냉전시대 흡입했던 좌파 세계관은 시장 자유 미국 경쟁 등 해방 후 우리 사회가 몰입해 온 주류 가치들의 극단적 쏠림을 막아주는 보완재로서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주변부 세계관을 중심적 세계관으로 내면화한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는 한 진보세력은 미래가 없다.
민주당이 미래를 위해 586의 굴레를 벗고 새로운 진보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길이다.
그런데도 강경파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인다. 대선 막판 586 퇴진 약속이 무색하게 우상호를 비대위원장으로 앉힌 것은 당장 살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진보의 미래보다는 자기들 방어를 목표로 뭉친 것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지만, 발을 딛고 있는 곳이 얼음장이면 정반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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