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시간이다. ○○이(만 4세)는 양치질도 하고 잠옷도 갈아입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가 젤리를 먹고 싶다고 말한다. 아빠는 한숨을 푹 쉬면서 “자기 전이고, 양치까지 다 했는데 지금 젤리를 먹으면 되겠어? 안 되겠어?”라고 한다. 아까까지 젤리를 먹고 싶다고 말하던 아이는 갑자기 손사래까지 치며 “아니야. 나 젤리 먹고 싶다고 안 했어. 내일 먹어야겠다고 한 건데?”라고 둘러댄다. 아빠는 약간 언짢아져서 “너 좀 전에 분명히 먹고 싶다고 말했잖아? 왜 거짓말을 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먹이고 또 이를 닦게 하면 된다. 하지만 아빠가 ‘지금은 젤리 같은 것을 먹으면 안 된다’라는 명제에 몰두되어 있으니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니 식탁 위에 엄마가 구워놓은 쿠키가 있다. 아이는 얼른 하나 집어서 먹으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가 “안 돼∼”를 외친다. ‘외출했다가 돌아와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라는 명제에 몰두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에 간다고 한 아이가 학원에 30분이나 늦었다. 학원에서는 전화가 오고 아이는 연락이 안 된다. 알고 보니 친한 친구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려서 같이 찾아주다가 학원에 늦은 것이었다. 화가 난 부모는 “네 할 일이나 잘하고 친구를 돕든가 말든가 해야지. 학교 끝나고 바로 학원 간다고 약속 했어, 안 했어? 부모와 한 약속은 안 중요해?”라고 한다.
부모의 말은 한편으로 보면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부모가 그렇게 말하면 아이는 너무나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뭐라 말해도 자신이 백전백패이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둘러대게도 된다.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너무나 올바른 원칙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들이대면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요구들을 안전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첫 번째 사례의 젤리를 먹고 싶어 하는 아이는 이렇게 다뤄야 한다. “아빠가 잘 알지, 네가 이 젤리 좋아하는 거. 이런, 먹고 이를 닦았어야 했는데 미리 닦아버렸네. 그런데 먹고 싶은 거지? 지금 당장?” 아이가 그렇다고 하면 “이게 애들이 되게 좋아한다더라”라고도 해준다. ‘네가 너무 먹고 싶은 마음 알겠어’ 하고 아이 마음의 정당성을 수긍해주는 것이다. 그 부분을 인정해 줘야 그 뒤가 꼬이지 않는다. 그렇게 해주고 나서 “그럼, 먹어야지 뭐. 먹고 나서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닦아야지. 아이고, 귀찮겠네. 근데 그래도 닦아야지”라고 해주면 된다.
두 번째 사례의 손을 안 닦고 먹으려는 아이도 “얼른 먹고 싶구나”라고 수긍해주면서 엄마가 하나 입에 넣어주든지, 물휴지로라도 닦고 먹게 한 다음, 다시 제대로 손을 닦게 하면 된다. 이 닦기나 손 씻기를 가르치는 이유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서다. 하지만 적절한 때가 아니어도 아이는 젤리나 쿠키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 마음이 들면, 그냥 그런 것이다. 마음은 마음이기에 맞다 틀리다를 말할 수 없다. 그 정당성은 인정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 사례의 학원에 늦은 아이도 그렇다. 친구의 휴대전화를 함께 찾아주려고 한 그 부분은 잘한 행동이다. 그 부분의 정당성은 인정해줘야 한다. “친구를 돕고 싶었구나. 정말 멋진걸”이라고 말해준 다음, 그와 같은 상황에서는 어떻게 행동하면 더 좋았을지 다양한 방법을 가르쳐주면 된다.
아이들은 성장 발달을 하기 때문에 언제나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이 문제가 언제나 병리적이지는 않다.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다. 맞닥뜨리는 문제 상황도 다 똑같지 않다. 이런 별의별 문제들을 아주 완벽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부모가 모두 다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문제의 전체에 있어서는 아이가 잘못한 것이더라도, 부분에 존재하는 아이의 타당성, 정당성만 좀 인정해주어도 아이와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그 ‘부분’은 마음일 수도 있고, 행동일 수도 있다.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아이가 정당할 때, 타당할 때는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지” “그 판단은 네가 옳았어” “그 행동은 참 잘했구나” 하면서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그다음에 오는 부모의 가르침을 더 잘 받아들인다. 아이의 자존감이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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