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이 매일 쏟아내는 페이스북 글을 읽고 있자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페북이 없던 시절엔 대체 어떻게 정치를 했을까, 그리고 글자당 사용요금을 매겼어도 저렇게들 써댔을까. SNS로 하는 ‘랜선 정치’가 금기시될 것까진 없겠지만 지금처럼 남발되는 건 문제다.
일단 너무 무책임하다. 복잡하게 꼬여 있는 현안들에 대해 ‘아니면 말고식’으로 몇 마디 툭툭 던지는 것만으로 정치인의 책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의 지방선거 패배 이후 사퇴한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0일부터 30일까지 8건의 페북 글을 올렸다. 최강욱 의원 징계와 팬덤정치, 최저임금, 미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폐지, 조유나 양 가족 사망 등 연일 다른 문제를 들먹였다. 야권 관계자는 “정치를 완전히 잘못 배웠다. 여론 간 보기도 아니고, 전직 당 대표급이 클릭 수 잘 나올 이슈들만 골라 정치적 메시지를 내는 건 결국 자기 장사”라고 지적했다. 그가 실제 이달 2일 당 대표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으니 ‘자기 장사’란 비판이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 공개발언을 자제 중인 이재명 의원도 페북상에선 여전히 요란하다. 지난달 15일 정부여당에 ‘기민한 안보 대응’을 요구하더니 그날 오후엔 정치보복을 비판했다. 17일과 25일, 30일엔 경제위기를 우려하며 민생을 강조했다. 이제 본인이 국회의원이니 직접 입법을 하면 될 텐데 정작 관련 회의나 토론회에 참석했다는 소식은 안 들린다.
요즘 정치인들은 ‘키보드 워리어’처럼 권력다툼도 SNS로 한다. 지난달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우크라이나행을 비판한 같은 당 정진석 의원과 사흘에 걸쳐 5차례 페북 설전을 주고받았다. 그냥 둘이 직접 통화를 하거나 카톡이라도 하는 게 모두의 정신건강을 위해 나았을 것 같다. 온라인에서 ‘이재명 책임론’을 앞다퉈 외치던 민주당 의원들도 막상 현실세계에서 만나면 피한다. 지방선거 직후 열린 의원총회를 다녀온 한 의원은 “페북만 보면 싸우기 일보 직전 같더니 정작 의총장에선 다들 조용하더라”고 했다. 최근 1박 2일로 열린 워크숍 토론장에서도 술이 남는 테이블이 더 많았다고 한다. 한 의원은 “갈등을 노련하게 해소하는 것도 정치의 기술인데 SNS상에서 감정들만 소모하고, 정작 판을 깔아주면 몸을 사린다”고 했다.
랜선 정치는 지지층만을 향한 노골적 메시지가 난무한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하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 자리씩 노리는 민주당 의원들은 연일 페북에 ‘개딸’들을 겨냥한 글을 올리고 있다. 한 전직 의원은 “하다못해 출마 선언마저 페북으로 하는 시대가 돼버렸다”며 “서로 건강한 질의와 응답을 주고받는 쌍방향 소통이 아닌 일방향적 주장뿐”이라고 했다.
한 중진 의원은 2020년 총선 직전 터진 코로나 사태를 원인으로 꼽았다. “사회적 거리 두기 속 21대 국회의원들은 당선 직후부터 2년 넘게 ‘페북 의정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이젠 진짜 현장으로 돌아가 정책을 만들어야 할 때다.” 손가락만 바쁜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조언이다. 과도한 ‘페북 정치’의 폐해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례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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