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은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로 외환위기 이후 23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고 어제 밝혔다. 외식비 기름값 등 생활물가가 치솟으면서 가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면 한국의 3분기 국내총생산이 1년 전보다 2.2% 감소하며 역성장할 것이라고 일본 노무라증권이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공급망 붕괴에 따른 위기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
지금 우리 경제는 물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일자리 부족과 경기 하강이 반복되는 진퇴양난에 처해 있다. 그 여파로 물가상승률에 실업률을 더한 국민고통지수는 1분기 10.6으로 2015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과 기업의 고통이 커지면 소비가 위축되고 실업이 다시 증가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 같은 악순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확실한 정책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폭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그럴 경우 경기가 더 침체될 수 있다. 당장 한미 금리 역전에 따른 자본유출 우려가 크지만 1800조 원이 넘는 가계부채 때문에 기준금리를 대폭 올리기가 어렵다. 환율 방어에 달러를 사용한 결과 외환보유액이 금융위기 이후 최대 폭으로 줄었지만 어제 원-달러 환율은 13년 만에 처음 1300원을 넘었다.
지금의 위기는 일부 지역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응이 더 어렵다. 미국은 지난달 물가상승률이 41년 만에 최고로 치솟으면서 월세를 못 낸 취약계층이 집을 잃고 모텔을 떠돌고 있다. 러시아의 가스공급 중단으로 유럽이 에너지난에 빠진 가운데 영국에선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로 도로가 마비됐다. 글로벌 경기충격이 국내로 전이될 경우 이미 부진에 빠진 한국 경제는 버티기 힘들어질 수 있다.
고물가와 저성장이 겹친 복합위기는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국은 지금 같은 추세라면 하반기 물가상승률이 7, 8%대에 이르고 경기는 올해보다 내년이 더 부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정부는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위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외환위기에 비견되는 경제 타격을 이겨낼 수 없다. 기업은 원자재 값 상승분을 가격에 전가하는 속도를 줄이고, 가계는 현명한 소비를 통해 고물가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각 경제 주체의 양보와 인내만이 국가적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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