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로 치면 1등석에 해당하는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2016년 도입됐다. 당시 국토교통부는 200km 넘는 거리에만 운행할 것, 심야에만 영업할 것, 요금은 우등버스의 1.3배를 넘지 않게 할 것 등 3가지 규제를 내걸었다. 2년 뒤 민간 자율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자 국토부는 일부 노선에 대해 거리와 시간제한 규제를 풀어준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도 버스사업자가 프리미엄 노선을 추가하려면 국토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족쇄는 그대로다.
▷프리미엄 버스 규제는 말로는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한국식 규제의 실상을 보여준다. 공무원의 규제 집착은 고질병이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지난달 초 퇴직 관료 중심으로 규제혁신추진단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 계획대로 최근 규제전문가 160명을 1년 계약직으로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문제는 세전 보수가 월 196만 원으로 내년 최저임금보다 5만 원 적다는 점이다. 열악한 조건에 경쟁률이 0.53 대 1에 그쳤다.
▷말은 규제전문가라고 하면서 월 보수를 196만 원으로 책정한 것은 정부 스스로도 혁신단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혁신단이라면 기업 활력을 키우는 노동개혁과 대규모 투자를 유도하는 수도권 규제개혁에 총대를 메고 결과에 대해 정부와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에게 그런 책임까지 지우긴 어렵다. 미달 사태 이후 정부는 혁신단 모집 2차 공고에서 하루 5시간만 일하면 되고 시간 선택도 가능하다며 근무 강도를 더 낮췄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들을 “자문위원 성격”이라고 규정했다. 혁신단이 출범도 하기 전에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퇴직 관료를 동원한 규제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 않은 것은 전·현직 공무원 간 유착 논란 때문이기도 하다. 과거 공무원들이 규제권한을 휘두르다 퇴직 후 민간에 취업한 뒤 현직 후배들에게 각종 민원을 하는 악순환이 끊이지 않았다. 2016년부터 5년 동안만 해도 취업 심사를 받은 퇴직 관료 588명 중 80% 이상이 민간에 재취업했다. 규제혁신단이 퇴직 관료의 민원창구로 전락하지 않도록 별도의 감시가 필요하다.
▷역대 정부가 개혁에서 실패한 것은 경험이나 자문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관료사회의 고질적인 ‘보여주기’ 관행 때문이었다. 지금 공무원들이 자기 부처 장관을 빛나게 할 덩어리 규제와 국무조정실에 보낼 자투리 규제를 구분해 발표용 자료와 보고용 자료를 따로 만들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달린 규제개혁이 관료주의 때문에 벌써부터 길을 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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