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길진균]윤석열 대통령의 가위바위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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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작 하나에도 의미 부여되는 현실
제대로 해내야 새로운 정치문화로 안착

길진균 정치부장
길진균 정치부장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이나 각종 회의에서 그가 등장하는 장면을 볼 때면 발언 못지않게 그의 손을 주시하게 된다. 윤 대통령은 대화할 때 동작을 많이 쓰는 편이다. 감정에 따라 손 모양이 달라지곤 한다.

5일 오전 출근길엔 ‘가위’ 손동작이 등장했다. 연이은 장관 후보자 인선 논란과 관련해 ‘사전에 검증 가능한 부분들이 많지 않았느냐’는 취재진 질문을 받자 그는 엄지와 검지를 편 가위 모양의 손을 치켜세우며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에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느냐”면서 날을 세워 반문했다. “다른 정권 때하고 한번 비교를 해보라”고도 했다. “대통령의 불편한 심경, 역정이 드러났다”는 언론과 야당의 비판이 이어졌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사진기자단

한 여권 인사는 “언론을 향해 ‘바위’가 아니라 ‘가위’를 내서 그나마 다행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 인사의 말처럼 윤 대통령이 발언에 강한 분노나 다짐이 담겼을 때 등장하는 손동작은 주먹이다. 지난달 23일 출근길, 경찰의 치안감 인사 정정 사태 때 그는 취재진의 질의에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며 “중대한 국기문란”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어이없는 과오” 등 원색적인 표현과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김창룡 경찰청장은 임기 한 달을 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교체됐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은 하나의 메시지다. 국정을 책임진 막중한 역할과 권한 때문이다. 대통령실 직원들은 매일 아침 도어스테핑 때 나타나는 그의 손동작을 ‘대통령의 가위바위보’라고 부르며 해당하는 이슈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을 추정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처음 겪는 새로운 정치실험이다. 이를 둘러싼 논란도 크다. 여권 내부에서는 날것에 가까운 대통령의 거친 메시지가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멈춰야 하는 것 아니냐’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대통령실로 전달되기도 했다.

대통령과 취재진 사이에 1분 안팎의 짧은 시간 동안 오고 가는 단문 단답은 분명히 오해를 낳을 소지가 있다. 주요 안건과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적인 답변이 장관의 존재감을 흐리고 있다거나, 언론플레이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의 소통에 목말랐던 국민에게 윤 대통령의 적극적 소통은 반길 일이다. 대통령의 의중을 둘러싼 핵관(핵심 관계자) 또는 측근들의 ‘전언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실험이기도 하다. 특히 불편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특유의 진솔한 화법으로 대답을 회피하지 않는 윤 대통령의 소통에 대한 강한 의지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8일 재개됐다. 사흘 만에 출근길에 취재진 앞에 선 윤 대통령은 한결 유연했다. 외가 쪽 친척의 대통령실 근무 논란에 대해서는 “동지”라는 설명과 함께 손바닥을 편 채로 손을 내미는 ‘보’ 손동작도 선보였다.

대통령의 손동작 하나가 백 마디 말을 대신할 수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아직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자신의 소통 스타일을 만들어 내면 된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다음 정부에서도 이어지는, 새로운 한국의 정치문화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윤 대통령이 소통에서도, 그 결과에서도 제대로 해내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정치문화 안착#도어스테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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