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아니라 사람을 지원하라”는 이야기는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VC) 사이에서 보편화된 명제다. 하지만 한 사람의 잠재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나 기술의 잠재성을 평가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투자를 결정할 때 투자자들이 활용할 만한 여러 정량적 지표가 있기는 하지만 투자자들은 대체로 창업자가 스스로 공개한 정보에 의존한다. 주관적 정보에 기초한 투자 결정은 ‘테라노스(Theranos)’나 ‘위워크(WeWork)’와 같은 실패 사례를 낳기도 한다.
알레산드로 피아자 미국 라이스대 존스경영대학원 부교수와 연구팀은 VC의 투자 결정 요인과 스타트업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는 요소, 그리고 창업자의 실제 전문 지식 수준과 자기표현 방식의 차이가 스타트업의 성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에 나섰다. 미국 4000개 이상의 벤처 기업을 대상으로 창업자가 지닌 경험과 스스로 갖추고 있다고 기재한 기술 및 역량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연구팀은 창업자들의 실제 전문 지식 수준을 정량적으로 측정하기 위해 창업자의 과거 사업 활동과 관리직 재직 경험 유무, 스타트업 사업 영역과 관련이 있는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에서의 석사 또는 박사 학위 보유 여부를 살폈다. 또 창업자들이 잠재적인 투자자들에게 공개하고 홍보하고자 한 전문 지식의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이들이 링크트인 프로필의 ‘기술 추천’ 항목에 기재한 내용을 데이터로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이들 기업의 단기적 및 장기적 성공 수준을 측정하기 위해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의 데이터를 이용해 각 벤처 기업이 유치한 투자금 액수와 인수 혹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자들이 출구 전략을 실현했는지 여부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 흥미롭게도 창업자가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표현한 지식수준과 실제 지식수준 사이에는 전반적으로 큰 상관관계가 없었다. 또 자신이 높은 역량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한 이들이라고 해서 높은 수준의 전문 지식 혹은 자격 여건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이 결과에서 연구팀은 실제 창업자의 지식수준은 투자자가 성공적인 출구 전략을 실현할 수 있을지 가늠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지만 ‘투자 유치’ 면에서는 다르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투자를 유치할 때는 창업자들이 스스로 표현한 지식수준이 훨씬 큰 차이를 야기했다. 다시 말해 스타트업의 장기적인 성과는 창업자의 실제 지식수준에 더 좌우되지만, 단기적 투자 유치 성과는 오히려 효과적인 자기표현에 더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에게 시사점을 준다. 피아자 교수의 연구에서도 드러나듯, 투자자들은 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해 신뢰할 만한 평가 결과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창업자가 실제로 보유한 전문적인 지식수준에 근거해 의사결정을 내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창업자의 전문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초기 단계 투자는 통상 인수합병이나 기업공개 과정에서 투자 의사결정자들이 창업자의 배경을 더욱 심도 있게 살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기업 실사’라는 프로세스가 잘 이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실망스러운 투자를 막기 위해 투자자들은 그들의 가정(假定)을 점검하고, 투자 결정이 창업자들의 실제 전문 지식 수준에 근거해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와 반대로 창업자들은 전문 지식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이를 효과적으로 알리고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벤처 투자 유치, 경험, 기술적 역량 확보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실질적 역량’의 가치는 쉽게 퇴색되지 않으며 성공에 대한 예측 요인까지 될 수 있다. 다만 투자를 유치하는 초기 단계에서 이런 결과를 빨리 구체화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특히 창업자들은 솔직한 자기 홍보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한다. 성공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에게 적절한 표현과 신호를 제공하는 편이 유리하다.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디지털 아티클 “단기 펀딩에는 창업자의 ‘자기 홍보’가 효과적”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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