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어제 “가능한 한 빨리 개헌 발의에 이르도록 진행하겠다”며 “국회에서 논의를 잘 마무리해 개헌 내용에 관한 3분의 2 결집을 확실히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피습 사망 뒤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단독 과반은 물론이고 헌법 개정에 긍정적인 연립여당과 다른 야당을 합해 개헌 발의선인 전체 3분의 2 의석을 훌쩍 넘기면서 개헌에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공식화한 것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은 보수우파가 추진해 온 오랜 과제지만 기시다 총리는 그간 개헌 추진에 신중론을 유지했던 만큼 그의 개헌 가속화 발언은 주목된다. 세계적인 신냉전 격화와 함께 우파의 상징 아베 신조 전 총리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세하면서 지금 같은 개헌의 호기가 없다고 보는 듯하다. 논의가 본격화되면 당파 간 조율이 쉽지 않고 국민적 호응 여부도 미지수인데, 그런 만큼 작금의 모멘텀을 놓쳐선 안 된다는 분위기다.
당장 헌법 9조 개정 논의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자민당은 ‘무력행사 영구 포기, 육해공 전력 불보유’를 규정한 9조를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자위 조치’를 내세워 자위대 보유를 명기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여기에 사실상 선제공격이 가능한 ‘적(敵)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공식화하고,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1%에서 2%로까지 증액하면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를 넘어 ‘세계 3위 군사대국’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일본의 군사강국화는 주변국의 경계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를 가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헌법 9조가 상징하는 ‘비무장 평화’를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없는 일본이 또다시 군사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에 대해 주변국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의 태도는 같은 전범국가로서 끊임없는 사죄와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해온 독일과 비교된다. 최근 러시아의 침략전쟁에 독일도 군사력 증강 등 ‘시대전환’을 선언했지만 주변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누그러뜨리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부끄러운 과거가 형식적 사과나 정치적, 법적 종결로 묻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그런 역사를 회피하기에 급급하다. 우경화 질주에 앞서 평화에 대한 신뢰부터 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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