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국민 신임에 난제 돌파할 추진력 생겨
‘아베 후계자’들 앞다퉈 강경책 제시할 수도
관계 개선과 도전의 도래, 그 양면성 대비해야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총격으로 사망했다.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 기간 중에 유세에 나선 정치가에게 총격을 가한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어느 국가에서도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폭거다. 외로운 늑대의 망동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유명을 달리한 아베 전 총리는 물론이고 가족과 일본 국민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아베 사망 이틀 후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연립여당 공명당은 압승했다. 개선(신규) 의석 125석 중 76석을 가져가 비개선(기존) 의석을 합치면 참의원 의석 전체 248석 중 146석을 얻어 절대안정 과반수를 확보했다. 자민당은 32개에 이르는 1인 선거구 중 28개를 휩쓸며 야당의 도전을 거침없이 물리쳤다. 자민당 단독으로도 63석을 얻어 개선 의석의 과반수를 손에 넣었다.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자민당, 공명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의 의석을 합치면 177석을 얻어 참의원에서 개헌 발의도 가능한 의석을 차지했다. 반면에 입헌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당은 의석수를 줄인 것은 물론이고 야당의 분열도 더 심화되는 양상이어서 자민당 천하는 상당 기간 도전자 없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참의원 선거의 승리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안정적 기반을 마련했다. 향후 3년간 국정 선거가 없는 관계로 장기 집권의 길도 열렸다. 국민의 신임을 받고 정치적 난제를 돌파할 추진력이 생겨나 한일관계 개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한 기시다 총리가 비둘기파로서의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고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느냐다. 기시다 본인은 비둘기파이지만 매파인 아베의 등에 올라타야만 안심하고 정치적 비행을 하곤 했다. 이제 기시다 총리가 본격적으로 일본 정계의 구심력을 강화할 것인가가 주목의 대상이다.
아베의 사망으로 영수를 상실한 자민당 최대 파벌 세이와카이(淸和會)는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고 보수파 단속에 나서야 할 국면을 맞았다. 만약 아베 후계를 노리는 차기 주자들이 군웅할거하면서 서로 각축을 벌인다면 기시다 총리와 다른 파벌들에는 당내 역학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의 후광에서 벗어나 자민당 파벌 간 합종연횡의 연금술사가 될 수 있는 정치력을 펼칠 것인가가 관심을 끄는 이유다. 그에겐 다시 안 올 기회이자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반면, 아베의 부재로 인해 자민당 내 우파들을 제어하면서 방향타를 제시할 인물이 사라진 것은 어찌 보면 악재다. 그만큼 우파들에게 아베는 절대적으로 상징적인 존재였다. 아베가 사라진 후 평화헌법 개정, 방위력 증대는 물론이고 한일관계를 비롯한 대외문제에 대해 우파들이 강경책을 앞다투어 제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베의 그늘에 있던 우파들이 전면에 등장해 주도권 다툼을 벌일 경우 일본 정계가 어떠한 모습을 띨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강경한 나머지 무너질 수도 있지만, 다른 목소리들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우파의 수장인 아베가 사망했기 때문에 한일관계에 호기가 도래했다고 치부하기에는 일본 정치의 역학이 복잡하다. 희망적 관측은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얄팍하다. 한일관계의 개선 가능성과 새로운 도전의 도래라는 양면적 가능성에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 정부가 아베 전 총리의 사망에 대해 적절하게 예의를 갖추어 조의를 표한 것은 좋은 출발이었다. 아베 전 총리는 한국에 대해 애증을 함께 가진 정치인이었다. 역사 인식의 면에서는 아쉬운 발자취를 많이 남겼지만, 자유 민주주의의 국제 연대와 시장 통합을 통한 성장에는 큰 족적을 남겼다. 일본 국민들의 슬픈 마음을 달래고 민주주의의 적인 폭력에 대해 공감을 표하는 것은 관계 개선에 청신호다.
선거에서 승리한 기시다 정부와 함께 본격적으로 관계 개선을 향한 적극적인 행보에 나설 때다. 기시다 총리도 한일관계 개선에 의욕을 가지고 있고,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도 한일관계의 개선을 다방면으로 촉구하고 있다. 오랜만에 만들어진 기회의 창을 잘 활용해야 한다.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전진을 향한 움직임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결국 관건은 국내다. 피해자와 관련 단체, 전문가들과 여론 주도층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리적인 합의 형성을 위한 노력이 병행되어야만 한일관계는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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