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는 올해도 잘한다. 시즌 시작 전 키움은 박병호, 박동원, 조상우 등 대표 전력을 잃었다. 그래도 지금 1위 SSG를 바짝 뒤쫓는 2위다. 사실 이 팀은 매년 주축 선수가 빠지는데도 늘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 나도 월간지에서 일할 때 ‘히어로즈는 왜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2016년에 성공했나’라는 기사를 작성한 적이 있다. 이들은 6년 후인 올해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있다.
“자리 하나 빠지면 그거 하나 들어가려고 몇 명이 달려드는데, 그때 누가 한번 (기회를) 잡겠죠.” 내가 취재를 갔던 때 이강철 당시 수석코치의 말이다. 나는 키움 히어로즈의 핵심 성공 비결은 선수층이 얇다는 한계를 기회의 장으로 바꾼 거라 생각한다. 히어로즈는 대형 유망주를 1군 경기에 바로 투입시킨다. 현실적으로 선수층이 얇아서이지만 젊은 선수들에게는 그게 직접적 기회다. 일단 활약하면 전국 단위로 이름이 나고, 연봉이 오르고, 메이저리그에 간다. 박병호와 김하성이 그랬고 지금 리그 최고의 타자인 이정후가 그럴 예정이다.
“저 일하고 싶어요. 너무 바쁘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후배 에디터는 종종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는 능력도 있고 태도도 좋은데 능력을 보여줄 기회가 드물다. 요즘의 젊은 콘텐츠 에디터들이 실무적으로 하는 일은 자기 이름도 남지 않고 진지한 피드백도 잘 돌아오지 않는 기업 홍보 관련 콘텐츠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업무분장도 잘되지 않아 후배의 일상은 무의미한 대기 혹은 무의미한 야근이다. 기회가 부족하니 동기도 약해진다.
요 몇 년 대기업에 들어갈 만큼 역량을 가진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갔다. 사연을 들어보면 동기부여가 큰 이유였다. 회사에서 버텼는데 권한도, 연봉 상승 폭도 애매하다면 고생을 감내할 이유가 없다. 퇴사 후 한 달 살기 등으로 자아를 찾는 인재의 사정 역시 들어보면 동기가 없어서다.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다. 고압적인 조직문화든, 산업 성장성의 한계든 인력 유출의 심리는 같다. 기회가 없으니 동기가 사라지고, 동기가 사라지면 인간이 버틸 동인이 사라진다.
나도 그랬다. 가장 즐거울 때는 ‘조금만 더 하면 뭔가 될 것 같은데’ 싶을 때였다. ‘여기가 한계다’ 싶을 때 하나 더 했던 일들, 그때 느꼈던 작은 성취의 쾌감들이 지금도 일의 큰 보상이다. 의미 없이 시간만 가는 날들도 그만큼 괴로웠다. 실제로 회사 사정상 그런 날이 길어졌던 때가 있었고, 그때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후회는 없다. 지금은 기회도 동기도 내 것, 내게 놓인 위기와 상관없이 그 가능성 자체에 감사한다.
6년 전 히어로즈와 지금을 보면 기회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는지 알 수 있다. 내가 인터뷰했던 김하성 선수는 풀타임 메이저리거다. 수석코치 이강철은 신생 팀 KT위즈 감독이 되어 2021년 우승을 차지했다. 나 역시 그간의 여러 기회 덕에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젊은 분들과 일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기회를 더 주면 어떨까. 기회 이상의 동기부여는 없음을, 20세기를 거치며 유례없는 성장을 만드신 인생 선배님들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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