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尹 옆에 탁현민이라도 있어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3일 03시 00분


새 정부 국정 지향점 모르겠다는 사람 벌써 많아
우왕좌왕 말고 ‘대통령 정체성’부터 뚜렷이 해야

이승헌 부국장
이승헌 부국장
윤석열 대통령을 두고 지지층에서 우려 섞인 분석이 속출하고 있다. 잇따른 인사 참사와 김건희 여사 관련 문제가 가장 자주 거론되고 ‘검찰 공화국’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어느 하나만으로는 취임 두 달 만에 펼쳐지는 이례적이고 위험천만한 지지율 하락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치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도대체 뭐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자주 내놓는다. 국민의힘 반도체산업 경쟁력강화특위위원장을 맡은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10일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은 마치 모든 인생의 목표를 다 이룬 사람처럼 보인다”고 일갈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한마디로 목표가 흐릿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건데, 필자도 이게 잘 드러나지 않은 윤 정권의 핵심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윤 대통령의 국정 지향점을 국민 누구나 알 수 있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집권 세력에 있나.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공정과 상식 회복은 검찰과 모피아 중심의 일방통행 인사로 일정 부분 까먹었다. 그렇다고 민생에 국정 동력을 다 쏟아붓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취임사 때 자유를 35차례나 언급한 것은 벌써 기억이 아득하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PI(President Identity), 대통령 윤석열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PI는 단순한 지도자 개인의 이미지가 아니라 정치인과 집권 세력을 평가하고 규정하는 종합적인 인식 체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문민정부’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준비된 대통령’을 표방해 그 틀에서 국정 드라이브를 걸었던 게 바로 PI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 회복이라는 정치적 브랜드가 찢어지고 있는데도 자신의 방향타를 재정립하려는 움직임이 아직 없다. 그렇다고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에 대통령의 PI를 복원시킬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악역을 자처하고 필요하면 쇼를 해서라도 대통령의 브랜드를 유지·보수하는 정치전략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집권 세력의 두 축인 윤 대통령의 후배 검찰 출신들과 모피아는 주어진 과업이나 태스크포스형 일처리에 특화되어 있다. 수시로 바뀌는 여론의 흐름을 파악해 이에 맞는 대응을 하는 정치형 인재들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느 정권이든 임기 초에 특히 중요한 대통령의 정무, 홍보 라인 참모들은 요새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오죽하면 대통령 PI 관련 핵심 보직인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을 아직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겠나.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우려의 대상으로 전락한 이유 중 하나도 대통령 메시지와 전체적인 브랜드를 관리하고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5월 11일부터 7월 8일까지 24차례의 도어스테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이 ‘글쎄’(52회)다. 특유의 화법을 감안하더라도, 임기 초 대통령이 해법 제시와는 무관한 표현을 이리 자주 사용하는 걸 참모들은 지켜만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 “문재인 정권의 탁현민 같은 이벤트 전문가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오겠냐마는, 그만큼 윤 대통령이 혼자 연출 각본에 주연 배우까지 하며 언제까지 좌충우돌할 수는 없다. 집권 세력은 하루빨리 윤석열 정권의 지향점을 다시 세우기 위해 집단 지성을 모아야 한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탈(脫)정치가 아니라 정치 실종으로 치닫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탁현민#대통령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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