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아파트 월세 1년 새 42% 폭등… 세입자들 “미쳤다” 비명[글로벌 현장을 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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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의 도시’로 불리는 미국 뉴욕은 최근 치솟는 월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완화돼 도심 주택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못 따라간다. 사진은 뉴욕의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월세의 도시’로 불리는 미국 뉴욕은 최근 치솟는 월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완화돼 도심 주택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은 못 따라간다. 사진은 뉴욕의 고층 아파트 건설 현장.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김현수 뉴욕 특파원
김현수 뉴욕 특파원
《“집을 보지도 않고 렌트(임차) 신청서부터 냅니다. 정말 미친(crazy) 분위기예요.” 지난달 말 뉴욕 맨해튼 허드슨강 인근 고층 아파트. 이곳 임대 담당 더스틴 에데스 매니저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날 집을 보러 온 사람만 10명이 넘었다. 빌트인 세탁기가 없어 공용 세탁실을 써야 하는데도 56m²(약 17평) 남짓한 방 하나짜리 아파트 월세가 약 4550달러(600만 원)였다.》

1년 전만 해도 월 3750달러이던 집이 그새 약 22% 오른 것이다. 이 집도 시장에 나온 지 4일 만에 누군가 채 갔다고 한다. 에데스 매니저는 “팬데믹 때 많은 사람이 도시를 빠져나갔다 다시 돌아오고 있다. 해외에서 유학생이나 주재원도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우리도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일주일 새 325달러↑

요즘 뉴욕 월세 시장은 ‘미쳤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치솟아 집 구하는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점퍼닷컴에 따르면 13일(현지 시간) 기준 맨해튼의 방 1개 아파트 중간값은 월 4195달러(약 550만 원)로 1년 전보다 42% 올랐다. 방 2개 아파트 중간값은 월 5250달러(약 690만 원)였다. 이마저도 맨해튼에서 집값이 저렴한 할렘을 포함한 가격이니 비교적 안전하고 학군 좋은 지역 월세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은 지 수십 년 된 아파트라도 엘리베이터와 도어맨이 있다면 ‘럭셔리’ 빌딩으로 친다.

최근 월세 상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전후 인플레이션과 연관이 깊다. 2020, 2021년엔 집주인이 세입자를 잡으려 ‘월세 두 달 공짜’ 같은 혜택을 주고 월세를 내려줬다. 하지만 지난해 말 다시 기업들이 비대면 근무에서 사무실 출근으로 업무 형태를 바꾸자 도심 주택 수요가 급증하면서 월세도 폭등하기 시작했다.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올려 주택 예비 구매자들이 월세 대열에 합류한 점도 수요 상승에 영향을 줬다. 집주인들은 41년 만의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관리 비용이 올라 월세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이 부족하니 맨해튼뿐 아니라 브루클린 퀸스 같은 뉴욕 다른 지역 아파트 월세도 급등세다. 빈집을 찾기도 어렵다. 전망 좋은 고층보다 어두침침한 저층 방이 더 싸다고 빨리 나간다.

실제 기자가 이달 초 센트럴파크 동쪽 중산층이 많이 사는 요크빌에 주변 시세보다 비교적 합리적인 월세 아파트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보니 그 이틀 새 누군가 보증금을 걸어버렸다. 남은 아파트는 500달러 더 비싼 코너 집뿐이었다. 퀸스 롱아일랜드시티 한 아파트는 일주일 만에 월세를 325달러 올려버렸다. 이곳 헨리 위버 매니저에게 왜 올렸는지 물으니 “간단하다. 수요가 치솟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월세 감당 못 하는 중산층

“월세가 너무 올라 밀려나는(priced out) 사람 손들어!”

최근 뉴욕 지역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월세가 지난해 2490달러에서 이달 3766달러로 올라 결국 이사 나와야 한다”며 비슷한 경험을 공유해 보자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자 ‘60% 오른 사람도 있다’ ‘이사를 가야 할지 룸메이트를 구해야 할지 고민이다’ 등 생생한 댓글이 400개 이상 달렸다. 한 누리꾼은 “월세가 치솟으니 맨해튼에 살던 사람은 브루클린으로, 브루클린 북부에 살던 사람은 남부로 대이동이 시작되는 기분”이라고 했다.

뉴욕은 ‘렌트의 도시’로 불린다. 미국 전체 주택 소유자 비중은 약 66%로 추산되는데 뉴욕만은 예외다. 약 60∼70%가 월세살이다. 830만 뉴욕 거주자 삶에 월세는 가장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뉴욕은 아파트 입주 조건이 까다롭다. 월세의 40배에 달하는 연간 소득 증명을 해야 한다. 소득이 월세만큼 오르지 못하면 ‘입주 심사’에서 탈락하거나 한 달 치 월세를 보증보험료로 내놔야 한다.

월세 안정화(rent-stabilized) 제도라는 뉴욕만의 독특한 세입자 보호 혜택을 보는 이들도 올해는 월세 인플레이션 바람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1969년 도입한 월세 안정화 제도에 따라 1947∼1974년 지은 여섯 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뉴욕시 ‘렌트 가이드라인 이사회’가 정한 대로만 인상률을 적용하게 돼 있다. 최근 정해진 인상률은 1년 계약에 3.25%, 2년 계약에 5% 수준이다. 시장 인상률에 비하면 한참 낮지만 최근 10년 동안 가장 큰 인상 폭이다.

20년째 월세 안정화 아파트에 산다는 맨해튼 주민은 기자에게 “집주인은 어떻게든 기존 세입자를 쫓아내고 싶어 한다. 집을 새롭게 공사하면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반면 세입자는 버티는 게 답이다. 여기서 나가면 뉴욕에 발붙일 곳이 없다”고 말했다.

‘로또 아파트’ 추첨도

뉴욕은 온갖 주택 정책을 실험해 왔다. 과거에는 월세 안정화처럼 가격 규제에 초점을 맞췄다. 가장 강력한 가격 규제인 ‘월세 통제(rent-controlled)’ 대상 아파트 월세는 1970년대 가격 수준에 맞춰져 있다. 1947년 이전 지은 집에서 1971년부터 산 세입자가 대상이다. 현재 약 1만 채가 남았다.

1990년대 인기 TV드라마 ‘프렌즈’의 모니카나 ‘섹스 앤드 더 시티’ 캐리 브래드쇼가 살던 뉴욕 아파트 모두 월세 컨트롤 대상으로 각각 월세 200달러, 700달러다. ‘2030세대가 감당하기엔 비현실적으로 좋은 아파트’라는 비판이 일자 제작진이 밝힌 설정이다.

하지만 세입자 보호 규제는 공급을 막음으로써 시장을 왜곡해 월세를 급등시킨 원인이라는 비판도 있다. 2010년대 들어 뉴욕시장도 공급에 초점을 맞춘 제도를 도입했다. 미 통계청에 따르면 뉴욕시 인구는 2000∼2020년 80만 명 늘었는데 주택 공급은 43만 채여서 수요 공급 불균형이 심각하다.

2014년 부임한 빌 더블라지오 전 시장은 대형 주택단지를 개발할 때 저소득층 전용 아파트를 포함시키면 세금을 공제해주는 제도에 힘을 실었다. 최근 퀸스 롱아일랜드시티나 브루클린 도심에 짓는 고층 아파트 상당수가 이 혜택을 통해 개발됐다. 저소득층과 중산층에 한해 한국 분양제도 비슷한 복권 추첨 방식으로 ‘로또 월세 아파트’에 당첨될 수 있다. 퀸스 롱아일랜드시티 신축 아파트 일반 월세는 방 1개 기준 4500달러가 넘지만 최저 소득구간용 로또 월세에 당첨되면 월 300달러면 입주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제도는 부동산 개발업자가 고급 아파트 짓는 데 세금으로 도와주는 형국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지난달 폐기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매년 세금 17억7000만 달러가 아파트 개발에 쓰였지만 정작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효과는 떨어졌다.

월세난에 에릭 애덤스 현 시장은 “중산층이나 저소득층이 감당할 만한 주택 공급에 주력하겠다”고 청사진을 내놨지만 시장의 평가는 싸늘하다. NYT는 “금리가 오르는 데다 공급망 문제로 원자재를 구하기 어려워 진행하던 공사도 멈출 판이어서 단기간 내 공급 확대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맨해튼 아파트#중산층#월세 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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