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도쿄 특파원으로 출국했을 때 코스피는 2,100대였다. 한동안 한국 증시를 잊고 살다가 지난해 초 우연찮게 코스피가 3,000을 돌파한 것을 봤다. 깜짝 놀랐다. ‘코스피가 이렇게 쉽게 끓어오르다니….’
그 무렵 일본에서 한국 지인들과 통화를 하면 그들은 온통 투자 이야기를 했다.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돈을 모아 집을 샀다. 목돈이 마련되지 않으면 주식이나 코인 투자를 했다. 대출 이자가 워낙 낮았기에 은행 대출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주점을 운영하던 한 지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를 명분으로 손쉽게 은행에서 돈을 빌렸고, 그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정부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상환유예와 만기연장 조치를 2년 넘게 실시했기에 원금 상환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3월 일본에서 귀국했더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주식과 코인은 연일 가격이 떨어졌고, 부동산 상승세는 주춤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투자를 권했던 지인들은 입을 닫았다. 13일 한국은행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을 보면서 속이 탔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경제 위기 때마다 정부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돈을 풀었고, 그 돈을 거둬들이는 정상화 때마다 항상 고통이 뒤따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경제를 살리느라 돈을 풀자 너도나도 은행 빚으로 부동산을 사고 소비를 늘렸다. 물가가 치솟았기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계속 올렸다. 이자 부담에 쓰러지는 가계가 하나둘 나왔다. 지금 상황과 판박이다.
다만 현 상황은 아직 고통의 정점이 아니다. 1차 충격은 10월 즈음 드러날 것 같다. 9월 말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상환유예가 끝나기 때문이다. 3월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960조 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해 40.3% 급증했다. 금융위는 “10월 이후에도 급격한 대출회수가 없도록 주거래 금융기관 책임관리를 추진하겠다”고 14일 밝혔다. 하지만 금융기관들은 대거 부실채권이 생길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은행도 비례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2차 충격은 연말 즈음에 완연해질 수 있다. 지난해 7월 0.5%에 불과했던 기준금리는 이달 2.25%가 됐고, 연말이면 약 3%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 ‘가계부채’ 문제가 수면으로 드러날 수 있다. 현재 한국 가계부채는 약 1900조 원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36개국을 대상으로 올 1분기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빚 규모를 조사한 결과 1위가 한국이었다. GDP 대비 104.3%였다. 급격하게 금리가 오르면 파산하는 가구가 속출하게 된다.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에 불이 붙게 되고, 그 폭탄이 터지면 금융 부실, 부동산시장 폭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돈 풀기 파티는 끝났다. 정상화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정부는 비상경제민생대책회의, 비상경제장관회의 등 요란한 이름의 회의를 연일 열고 있지만 신통한 해법이 있을 리 없다. 가계와 기업은 고통스럽지만 끈질기게 구조조정해 건전성을 높일 때다. 정부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나지 않는지 철저하게 점검하면서 취약계층의 부담을 낮추는 핀셋 지원을 해야 한다. 아울러 일자리를 늘려 가계소득을 증가시키는 정공법도 필요하다. 이제 내려가기 시작하는 롤러코스터의 손잡이를 꽉 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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