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법 개정 논란, 쟁점과 근본 해법은[동아시론/장영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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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 진영갈등 이용, 국민반감 커져
개정안 봇물, 제한구역 등 갈등 첨예
집회 본질 되새기고 시위문화 개선해야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민국의 굴곡진 역사 속에서 집회·시위에 대한 인식과 문화도 크게 바뀌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데모’로 대표되던 시위가 민주화 이후 국민들이 자기주장을 펴는 정당한 권리로 인식이 바뀌었고, 그로 인한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경과하면서 집회·시위에 대한 비판이 점점 커지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집회·시위가 더 이상 민주화 투쟁이 아니라 해당 집단의 이익을 주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데, 왜 특별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이 많아졌다. 둘째,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저항권 행사로서의 시위와 민주화 이후의 의사 표현으로서의 집회·시위는 기본적인 목적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 방법도 달라야 하는데, 집회·시위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셋째, 집회·시위가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립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면서 집회·시위의 민주성과 정당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더욱 약화되었다. 진영 갈등에 이용되는 집회·시위의 편향성이 국민의 비판 의식을 키운 것이다.

최근 집시법 개정에 대한 여야의 논란도 이런 맥락에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뿐만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의 시위가 강행되는 등 집회·시위가 진영 갈등의 최전선처럼 되면서 집시법 관련 쟁점들도 날카롭게 대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회·시위의 혼란 상황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집회·시위의 본질 및 이에 대한 제한의 합리적 근거를 되새겨야 한다. 집회·시위는 ‘의사 표현’의 수단이지 ‘의사 관철’의 수단이 아니며, 타인의 기본권 등 중대한 법익의 보호를 위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오래전 일이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앞두고 농민들의 반대 시위가 있었다. 당시 여론은 자동차 등 공산품 수출을 위해 FTA 체결은 불가피하지만, 농산물 수입으로 인한 농가의 타격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농민들이 죽창을 들고 나와 강경 시위를 하면서 여론의 반응이 매우 나빠진 적이 있었다.

민주적 집회·시위는 독재 시절의 민주화 투쟁처럼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 아니다. 민주화된 정부하에서 소수집단의 목소리를 높여서 다수 국민들의 공감을 얻고, 이를 통해 다수결에 의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다. 그런데 소수집단이 폭력적인 집회·시위를 통해 다수 국민들을 압박하여 원하는 결과를 관철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다수결을 무시하는 소수파의 독재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았다. 친정부 성향 집회와 반정부 성향 집회에 대해 차별적 대응을 했던 것이나 규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서 논란을 빚는 일도 적지 않았다. 또한 국회가 헌법재판소의 야간 옥외집회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에도 집시법 개정을 계속 손놓고 있다가 문 전 대통령의 사저 앞 시위, 윤 대통령 집무실 앞 시위 등이 문제 되자 집시법 개정안을 신속하게 발의한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여야 개정안의 내용을 보면, 대통령 집무실을 집회·시위 제한구역에 포함하자는 안은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 현행 집시법은 대통령 관저를 집회·시위 제한구역에 포함하고 있는데, 청와대 이전으로 인해 대통령 집무실이 배제된 것은 다른 공공기관들을 제한구역으로 인정한 것과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 사저를 제한구역에 포함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전직 대통령의 사저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집회·시위 제한구역을 두는 집시법 제11조를 삭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예는 선진 외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집회·시위가 제한될 수 없는 절대적 기본권처럼 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국가기관의 활동에 우선한다고 주장하지만, 국가기관의 활동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이 아닌가?

오히려 주민들의 과도한 피해를 막기 위해 집회·시위의 소음 제한을 실질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일 등에 비해 주택가 소음 기준이 높을 뿐만 아니라, 한 시간에 3회 이상 최고 소음 기준을 초과할 때 비로소 확성기 사용 중지 등을 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재검토해야 한다. 그 밖에도 집회·시위의 쟁점들은 많다. 이런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은 국민 의식의 변화 및 이에 터 잡은 집회·시위 문화의 개선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집시법 개정#근본 해법#시위문화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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