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데뷔 9년 만에 활동 중단을 깜짝 선언했던 방탄소년단(BTS)은 눈시울을 붉히며 번아웃(신체적 정신적 탈진)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들의 번아웃 호소는 BTS마저 혹사시키는 K팝 아이돌 시스템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번아웃 증후군은 누가 봐도 살인적 스케줄에 시달리는 유명인들만 겪는 현상이 결코 아니다. 동아일보와 설문플랫폼 SM C&C ‘틸리언 프로’가 156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34.7%, MZ세대의 43.9%가 번아웃을 겪었다고 답했다.
성과중심주의 사회에서 스트레스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뿐 아니라 오히려 일종의 훈장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심리적 압박감조차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다는 징표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아 정체성을 일과 생산성에만 두면 만성 과로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다. 번아웃 상태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계속 몰아치게 될 위험이 높다.
디지털화의 파괴적 영향력 때문에 연령대과 직업군을 불문하고 번아웃으로 내몰릴 위험은 더 높아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끊임없는 이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알람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사회적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열등감이나 부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피로도는 높아졌는데 온전한 쉼을 누리기는 더 어려워졌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인 애슐리 윌런스는 각종 이메일이나 SNS, 메신저 알람이 여가시간의 중간중간 끊임없이 침입해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하게 훼방 놓는 것을 ‘시간 부스러기’ 현상이라고 명명한다. 그나마 갖는 일과 중 휴식 시간도 이렇게 부스러기처럼 으스러져 버리면 재충전과 회복이 일어날 기회는 매일 자신도 모르게 박탈된다.
번아웃은 정신건강뿐 아니라 업무 생산성에도 비효율적이다. ‘여키스-도드슨의 법칙’은 스트레스와 과업 성취도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스트레스와 생산성의 관계는 역U자형 곡선을 그린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일정 정도를 넘어서면 수행능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구성원들이 만성적인 번아웃에 시달리는 사회가 유기적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세계적인 고물가 고금리로 인한 고통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적 심리적 타격까지 더해지면서 번아웃의 임계 수위에 도달한 이들은 더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번아웃 예방을 위해 성과만능주의에 대한 사회적 반성뿐 아니라 일과 쉼을 적절히 조화시키며 스스로를 회복해 가는 개인적 노력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번아웃을 달래는 데 꼭 거창한 여행이나 도피처가 필요한 건 아니다. 잠시 모든 알람을 꺼두고 현재에 오롯이 집중하는 연습만으로 내면의 회복력이 길러진다. 치열했던 상반기가 가고 여름 휴가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올해 여름엔 삶에서 정말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조용한 시간’으로 쉼을 누려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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