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국가 예산편성권이 또다시 ‘뜨거운 감자’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상설화 때문이다. 지난달 민주당 의원 32명이 발의한 국회법 개정안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특별’을 뗀 예산결산위원회가 정부의 재정 총량과 상임위원회별 지출 한도를 ‘심사’하도록 했다. 심사 결과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부안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
개정안에 담긴 주요 내용은 400자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간단치가 않다. 개정안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이 얼마나 늘어나는지뿐만 아니라 정부 부처별 지출 한도를 국회에 미리 보고해야 한다. 기재부는 예산을 편성할 때 부처별로 요구할 수 있는 예산 한도를 정해 주고 있다. 이를 국회가 함께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정부의 예산 편성 단계부터 국회가 관여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는 셈이다.
개정안은 발의되자마자 위헌 논란이 나왔다. 헌법 제54조는 정부가 예산안을 편성해 제출하고 국회가 이를 심의, 확정하도록 하고 있다. 행정부와 국회 간 견제, 균형을 위해 권한을 나눠 뒀다. 국회가 예산 편성부터 관여하는 건 이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예산결산위원회에서 건의한 국회안을 따를지는 정부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편성권 침해가 아니라고 했다. 개정안에 담긴 ‘심사’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자세히 조사해 등급이나 당락 따위를 결정한다’이다. 말 그대로 건의라면 왜 예산결산위원회가 위헌 소지를 무릅쓰고 부처별 지출 한도를 미리 심사하겠다는 건지 설명이 필요하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지점은 또 있다.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은 30여 명이라고 한다. 이들과 국회예산정책처, 위원 보좌진 등을 활용해 심사를 진행하겠다는 게 민주당의 구상이다. 기재부에서 예산만 들여다보는 공무원이 200여 명이다. 민주당은 전체적인 금액만 보기 때문에 인력은 문제가 안 된다고 하지만 총 예산만 조정하면 개별 예산은 알아서 바뀐다는 말인지 의아하다.
민주당 관계자는 개정안을 만드는 데 “5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정권을 내준 뒤 행정부를 통제하기 위해 내놓은 ‘예산 견제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상설화는 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출범 전 야당 시절부터 주장했던 내용이다. 5개월보다 10배 긴 5년이라는 시간은 조용히 흘려보냈다.
국회에선 “기재부에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집중돼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또한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예산안에 대한 국회의 권한 강화를 정당화시켜 주지는 않는다. 제헌절인 17일에도 여야는 유불리를 따지며 21대 후반기 국회 원(院) 구성에 합의하지 못했다. 예산은 국회의원 당락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 예산마저 정치 논리에 더 휘둘릴 길을 열어주는 것이 옳은지 다 같이 따져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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