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農)’은 ‘논밭을 갈아 농작물을 심고 가꾸는 일’을 뜻한다. 이 ‘농’은 필자의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단어다. 대학 시절엔 식물병원 미생물, 석사 과정에서는 독소를 내는 곰팡이, 박사 과정에서는 해충 방제에 주로 이용되는 미생물을 연구하며 농업 생태계의 미생물과 함께했다. 농업회사법인을 창업해 품종 연구를 시작한 뒤로는 더욱더 ‘농’과 가까워졌다. 직접 친환경 벼농사를 지으면서 농의 가치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산골 마을 앞 공동묘지 비문에 ‘나는 씨앗 뿌리는 농부입니다’라고 적힌 것을 본 적이 있다. 농부에 대한 자부심과 자긍심이 느껴져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나라도 수많은 농부들이 자연에서 씨앗 뿌리는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이런 비문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최근에는 대학에서도 ‘농’을 지우기 시작했다. 내가 전공한 ‘농생물학과’는 지금 ‘식물의학과’로 명칭이 바뀌었고, 어느 대학은 아예 농과대학을 없애고 바이오, 생명과학 등의 단어를 붙여 단과대학의 명칭을 다시 작명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코로나 팬데믹 상황을 겪으면서 ‘농’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전환 교육을 통해 지속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는 방향 전환의 목소리가 높아진 덕분이다. 도시와 자본에 휩쓸려 질주하는 격변의 시간 속에서도, 건강한 세상을 지키기 위한 희망의 싹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농업 현장을 지키는 것은 매년 새로운 싹을 틔우는 기쁨과 긍지가 있는 일이다. 생태계의 근간을 살리는 ‘농’의 참된 의미와 사명을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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