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한국 증시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이 160억 달러로 중국을 뺀 아시아 신흥국 가운데 대만, 인도에 이어 3번째로 많은 규모였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7일 보도했다. 달러 가치가 20년 만에 최고로 뛰면서 글로벌 자금이 환율에 취약한 아시아 시장을 떠나는 것이다. 한미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 전인데도 자본 유출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최근의 달러 강세는 ‘슈퍼 달러’, ‘킹 달러’라는 말을 유행시킬 정도로 이례적인 수준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서 세계의 자금이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달러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여파로 올 들어 원화 가치는 9% 넘게 하락했고, 유럽 유로화와 일본 엔화 가치는 각각 11%와 17% 떨어졌다. 각국은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자본 유출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한국은 원-달러 환율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보유 외환이 급감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6월 말 외환보유액은 한 달 전보다 94억 달러 넘게 감소했다.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1월 이후 13년 7개월 만에 가장 많이 줄었다. 현재의 외환보유액 4383억 달러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6810억 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이달 말 미 연준이 금리를 대폭 올려 한미 금리가 역전되면 자본 유출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 지금의 보유 외환이 외환위기의 방파제로서 충분한 수준인지 의문이다.
자본 유출이 시작된 상황에서 정부의 환율 대책이라고는 외국인의 국채 투자에 비과세 혜택을 주는 정도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국이 시행 중인 조치를 뒤늦게 도입하는 것만으로 돈의 흐름을 돌리기는 어렵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어제 외신 인터뷰에서 “자본 유출은 금리 차이 같은 한 가지 요인으로만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강조한 말이겠지만 한국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상반기 역대 최대 규모에 이른 무역적자 문제에 대한 해법부터 찾아야 한다. 오늘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재무장관회의에서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을 위한 첫 단추를 채우는 것도 중요하다. 한미 금리 역전을 앞둔 지금, 정부와 한은은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