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마지막 날, 문서 한 장을 받아 든 그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억울함에서 벗어난 해방감은 두 번째, 마음고생한 순간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복잡한 감정이 우선 밀려왔다. 죄인처럼 입을 닫고 꾹 참아온 그는 그때서야 담담하게 가족과 지인들에게 알렸다. “이제 끝났다”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30년 넘게 군복을 입고 핵심 보직을 거쳐 온 그의 삶이 무너진 건 2018년 7월. 더불어민주당과 군인권센터가 박근혜 정부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작성했다며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란 8쪽짜리 문건을 공개했을 때였다. 파장은 엄청났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헌정 중단을 노린 국기 문란 사건이라며 합동수사단 구성을 지시했다. 2주 뒤 청와대는 67쪽짜리 부속 문건까지 공개했다. 문건에는 ‘광화문 여의도 탱크 투입’ ‘국회의 계엄 해제 제지’ 등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서 친위 쿠데타를 위해 만든 문건이라는 등 음모론으로 이어졌다.
조사는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관계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소환됐고, 압수 수색만 90곳 넘게 진행됐다. 기무사 간부(중령)로 계엄 문건 작성 당시 실무 책임자였던 그는 이때 ‘핵심 관계자’로 지목됐다. 합수단은 반년가량 강도 높은 조사로 그를 압박했다. 하지만 특별한 혐의는 나오지 않았다.
이후 그는 육군 본부로 발령받았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새 일터에 적응할 무렵 더 큰 시련이 닥쳐왔다. 군이 ‘법령 준수 위반’이란 명목으로 그를 내부 징계한 것.
근거도 모호한 징계를 받은 그는 즉시 항고했다. 당시는 야권을 중심으로 문재인 정부가 공개한 문건이 최종본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된 시점이었다. 그렇다 보니 문재인 정부가 이런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 다시 자신을 희생양으로 단상 위에 올린 것이라고 그는 봤다.
통상 한 달 안에 이뤄지는 징계 항고심이 열리기까진 무려 2년 반의 시간이 필요했다. 국방부는 지난달에야 항고심을 열더니 곧 징계 취소 통지서를 보냈다. 정권 교체 후 두 달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결국 그는 ‘근신 7일’ 징계로 2년 반을 사실상 ‘징계 상태’로 지냈다. 진급은 누락됐고, 불면증과 스트레스로 정상적 생활이 어려웠다고 그는 항고의견서에 썼다. 문건 작성에 관여한 다른 간부 한 명은 2020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목숨을 끊기 얼마 전까지도 그 간부는 주변에 억울함을 호소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계엄 문건 관련해 200명 넘게 조사를 받았지만 유죄 판결은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 그의 징계까지 무혐의로 종결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걸어둔 마지막 올가미도 사실상 풀렸다.
계엄 문건 파동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히 덮을 문제가 아니다. 억울함을 호소한 이들이 속출했던 만큼 철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당시 누군가 최종본이 아닌 문서를 ‘모종의 의도’를 갖고 청와대에 흘렸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징계는 풀렸지만 그는 여전히 잠을 잘 못 잔다고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