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오찬을 했다. 윤 대통령이 ‘이태원로22’ ‘국민의집’ 등 대통령실 명칭 후보군이 모두 마음에 안 든다고 하자 한 참석자가 우스갯소리로 “용산에 있으니 ‘용궁’ 어떠냐”고 했다. “궁이 들어가면 다 중국집 이름 같다”는 윤 대통령 답변을 다들 웃어넘겼다. 나흘 뒤 대통령실은 옛 청와대를 대체할 집무실 이름을 정하지 않고 당분간 ‘용산 대통령실’로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요즘 국회와 정부 부처 공무원은 용산 대통령실을 풀네임으로 부르기 쉽지 않자 용궁으로 짧게 줄여 부른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너무 길고, 국방부 청사가 있는 용산으로 줄이면 대통령 집무실이라는 상징성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프랑스의 엘리제궁, 러시아의 크렘린궁처럼 해외에서도 대통령 집무실을 궁으로 부르는 사례도 있다. 영문 약칭은 Dragon Palace의 이니셜 DP가 아닌 용산을 영어로 번역한 Dragon Mountain의 이니셜 DM이 자주 쓰인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18일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의혹을 비판하며 “국민의힘 보좌진과 기자들은 대통령실을 용궁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용궁의 의미에 대해 그는 “용산에 있는 궁이라는 의미도 있고, 대통령과 아주 가까운 그들만의 리그라는 뜻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대통령실을 용궁으로 불렀다. 야당이 대통령실을 비판하기 위해 왕조시대와 신분사회를 연상시키는 궁(宮)이라는 단어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다.
▷당초 대통령실 명칭 5개 후보에 대한 국민선호도 조사에선 대통령실의 도로명 주소인 ‘이태원로22’가 1위였다. 권력기관 이름을 인위적으로 짓지 말고, 영국 총리 관저인 ‘다우닝 10번가’처럼 자연스럽게 주소로 부르자는 것이다. ‘이태원로22’는 대통령 집무실의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최종 선택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대통령 집무실 주변 도로명을 먼저 바꾸고, 거기에 대통령을 상징하는 1번지를 달면 어떨까. 미국 백악관 남쪽을 좌우로 가로지르는 도로명도 뒤늦게 ‘헌법로’ ‘독립로’가 됐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종식시키고,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며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집권 2개월 만에 의도와 달리 집무실 명칭이 긍정적 의미보다는 부정적 뉘앙스로 불리기 시작했다. 대통령실은 서두르지 않고 국민과 소통을 넓혀가면서 합당한 집무실 이름을 짓겠다고 했는데, 왜 용궁이라는 말이 확산되고 있는지 자문(自問)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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