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정한 ‘세계 기초과학의 해’인 올해 한국 과학계는 겹경사를 맞았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우주발사체 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데 이어 허준이 미 프린스턴대 교수(한국고등과학원 석학교수·39)가 한국계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았다. 필즈상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지만 40세 미만 수학자들에게 4년 주기로 수여해 노벨상 받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도 먼 얘기만은 아니지 않을까. 한국 과학자들 중 노벨상에 가장 가까이 간 사람은 4명. 세계적 학술정보회사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유력 수상 후보(Citation Laureates)로 발표한 학자들이다. 유룡 한국에너지공대 석학교수(67),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62), 현택환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석좌교수 겸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장(58), 5일 향년 94세로 별세한 이호왕 고려대 명예교수다. 고인은 ‘한탄 바이러스’를 최초로 발견한 후 백신과 치료법까지 개발해낸 공로로 지난해 유력 후보 명단에 올랐다. 살아있는 ‘노벨 클래스’ 과학자 3인에게 물었다. “언제쯤 한국 최초의 노벨과학상을 받게 될까.”》
“화학 수상 분위기 무르익어”
2014년 한국인 최초로 유력 후보 명단에 오른 유 교수는 “노벨상을 받는 시기가 빨리 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유력 후보로 발표될 당시 KAIST 화학과 교수 겸 IBS 나노물질 및 화학반응연구단장이던 유 교수는 약물 전달, 촉매, 에너지 저장 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기능성 메조다공성물질 설계 분야의 권위자다.
“노벨상은 가장 훌륭한 연구를 했다고 주는 게 아니다. 인류 공헌도도 높아야 하는데 그건 운이 좋아야 한다. 유력 후보 명단에 오른 한국 학자가 20명 정도 나오고 운도 따른다면 그때 받게 될 것이다.”
2002년부터 매년 유력 후보 명단을 발표해온 클래리베이트는 피인용 세계 상위 0.01%에 속하는 논문을 쓴 학자들 중 연구의 독창성과 인류 공헌도를 따져 후보를 선정한다. 선정된 학자들 가운데 실제 노벨상을 받은 비율은 17%다. 확률적으로는 이 명단에 오른 한국인이 6명 이상 되면 수상자가 나올 수 있는 셈이다.
2020년 유력 후보로 꼽힌 현 교수는 수상 후보로 예측되는 시기와 실제 수상 간의 시차가 4∼5년임을 감안하면 “화학 분야는 한국인 수상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 같다”고 했다. 현 교수는 나노 입자를 균일하게 합성하는 방법을 개발해 QLED 디스플레이 등의 상용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클래리베이트가 유력 후보로 발표한 그해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2013년 물리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피터 힉스가 유일하다. 2019년 화학상 수상자 3명 중 2명은 4년 전인 2015년, 2020년 화학상 수상자는 2015년 유력 후보 명단에 올랐다.”
노벨상 근접 학자 17명
2017년 유력 후보가 된 박 교수도 “노벨상으로 가기 전 단계로 알려진 국제적 상을 받거나 해외 학계에서 수상 후보로 점치는 한국 학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이것이 상서로운 징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을 해본다”고 했다. 박 교수는 세계 최초로 안정적인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하고 효율을 높여 상용화도 이룬 공을 인정받았다.
“일본이 노벨상을 많이 받아서인지 정보가 빠르다. 2018년 도쿄대 방문 교수로 갔는데 이차전지가 노벨상을 받을 거라는 얘기를 하더라. 놀랍게도 2019년 이차전지를 개발한 학자들이 화학상을 받았다. 당시 그 자리에서 10년 후엔 태양전지가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첫 한국인 수상자가 언제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후로는 봇물 터지듯 많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세리 선수 이후 한국 여성 골퍼들이 줄줄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우승했듯 말이다.”
이상 3명은 모두 화학상 부문 수상 후보들이다. 이 밖에 생리의학상에 가장 근접한 학자로 RNA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겸 IBS RNA연구단장(53)이 있다. 김 교수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원인 미국국립과학원과 영국 왕립학회에 모두 회원으로 선정됐다. 2020년엔 코로나의 RNA 전사체를 세계 최초로 분석해 진단 기술을 개선하고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기여했다.
한국연구재단은 2019년 유, 박, 현, 김 교수를 포함해 ‘노벨과학상 수상자의 연구업적에 근접한 한국 연구자’ 17명의 명단을 발표한 적이 있다. 화학 분야가 9명으로 가장 많았고, 생리의학 분야가 5명, 물리학은 김필립 하버드대 교수 등 3명이었다.
“한국 과학 기적적으로 발전”
현 교수는 “피겨 여왕 김연아, 축구 선수 손흥민, 영화 감독 박찬욱이 나올 동안 과학계는 뭐 했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며 “하지만 한국 과학은 기적적으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한국 과학기술의 역사는 길게 잡아도 70년이 채 안 된다. 한미 원자력협정을 체결하고 문교부에 원자력과를 설치한 때가 1956년, 산업기술 연구개발을 주도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은 1966년, 산업기술에서 기초과학 육성으로 정책 전환을 한 시기가 1989년,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IBS를 설립한 건 2011년이다. IBS가 벤치마킹한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일본 이화학연구소가 1911년과 1917년 설립됐으니 100년 늦은 셈이다. 출발은 늦었지만 지난해 한국의 과학기술혁신역량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5위로 올라섰다(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누리호가 세계 7대 우주강국의 역사를 쓰며 솟아오를 때 같은 과학하는 사람으로서 눈물이 났다. 우주발사체는 과학 기술이 집대성된 종합 과학이다. 누리호가 성공했다는 건 전반적인 과학기술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증거다.”(박 교수)
한국 과학기술의 도약 비결로 유 교수는 경제성장과 국가적 과학기술 진흥 노력을 꼽았다. 유 교수는 1973년 대학에 입학했는데 3학년이 될 때까지 시골집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에 머리 태워가며 공부했다고 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이 0.5%에도 미치지 못했던 시절인데 지난해는 4.64%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의 연구개발 투자 강국이 됐다.
박 교수는 한국인 특유의 향상심과 교육열 덕분이라고 했다. “한국인에겐 1등 하고 싶어 하는 DNA가 있다. 우리의 교육제도와 과열된 교육열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창의성도 어느 정도 기초가 만들어진 다음에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필즈상을 받은 허 교수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받은 교육이 바탕이 됐다고 본다.”
“실적주의 연구풍토 벗어나야”
유 교수는 ‘노벨 클래스’의 학자층이 두꺼워지려면 앞으로 초중등 교육도 연구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를 잘 만드는 사람이 필요한데 우리 교육은 문제를 잘 푸는 사람, 틀리지 않는 사람을 영재로 뽑는다. 엉뚱한 호기심을 격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
연구는 고유성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실적을 많이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순수한 호기심에 연구해서 좋은 논문을 썼더니 남들이 인용을 해가는 식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처음부터 인용이 많이 되는 연구, 그럴듯한 연구에 매달린다. 그래야 승진도 하고 연구비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적 위주의 사회가 돼 가는 건 경계해야 한다.”
박 교수는 “요즘 젊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걸 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간섭 덜하고 자유롭게 놀도록 놔두면 잘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기초다 응용이다 나눌 필요도 없다. 기초 없이는 응용이 안 되고, 응용을 생각하지 않는 기초도 없다.”
현 교수는 과학 영재들이 의대로 몰려가는 현상을 우려했다.
“천재 한 명이 큰 문제를 해결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여러 연구자들이 협업해 해법을 찾는 추세다. 아인슈타인이나 퀴리 시대는 논문 저자가 한 명이었지만 지금은 논문 한 편에 저자가 10명이 넘는다. 남들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것을 시도하고 만들어내는 작업에 흥미를 느끼는 젊은 연구자들이 없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성장하기까지는 다른 나라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인류에 기여하는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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